황 작가는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할매’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작가로서 인간이 빠진 자연만의 서사를 쓰는 건 처음이라 무척 어색했다”면서도 “하지만 스스로 만든 문장에 빠져들며 기쁨과 놀라움도 함께 느꼈다. 어쩌면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쓰며 자연과 교감하던 순간에 느낀 기쁨과도 닿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석영 작가가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신간 장편소설 ‘할매’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창비).
1943년생인 황 작가는 올해로 82세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왕성하게 집필을 이어갈 수 있는 건 계속 작품을 쓰고싶다는 ‘창작욕’ 때문이다. 그는 “시력이 떨어져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상태로 글을 쓴다”면서도 “한 쪽 눈으로 글을 쓰는 것도 막상 해보니까 할 만하다. 지금 이 순간도 다음 작품을 쓰고 싶어 움찔움찔하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건강 관리를 위해 그는 아침마다 특별한 ‘해독주스’를 마신다. 당근, 사과, 양배추. 브로콜리, 블루베리와 함께 유산균을 한 알 넣어 갈아 만든 건강한 주스다. 황 작가는 “건강을 위해 특별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날 때면 부인과 함께 집 앞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작은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나만의 건강 관리 비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70대까지 남부럽지 않은 건강을 자랑했던 그는 지난해 해외 체류 중 욕실에서 넘어져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큰 사고를 겪었다.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데만 두 달 반, 이어진 재활 치료에 석 달이 더 걸렸다. 황 작가는 “사고을 겪고 나니 다리 근육이 확 빠져 폭삭 늙은 기분”이라며 “오늘도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열의만큼은 늙지 않는다. 그는 “늙은 작가의 소망은 백척간두(百尺竿頭·벼랑 끝에 선 듯한 절박한 자리) 진일보”라며 “미수(米壽·88세)가 되려면 좀 남았는데, 그 동안 2~3편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수까지는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600년 팽나무로 그려낸 관계의 순환
1943년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황 작가는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군부독재 시절 사랑과 저항의 시간을 그린 ‘오래된 정원’, 한국전쟁의 비극과 집단 기억의 상처를 정면으로 파고든 ‘손님’ 등이 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1989)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대산문학상(2001, ‘손님’),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2018, ‘해질 무렵’)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해질 무렵’으로 2019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철도원 삼대’로는 2024년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 문단도 그를 주목했다.
신작 소설 ‘할매’는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새가 남긴 팽나무 씨앗이 ‘할매’가 돼 수 백년 동안 인간 군상의 삶과 역사를 품어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황 작가는 이 나무의 나이테를 따라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민초들의 운명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작품 전체를 꿰뚫는 핵심은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은 서로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관계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며 “600년을 살아온 장성한 나무의 이야기가 삶과 죽음,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와 문명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황석영 작가 주요 활동 및 수상 내역(그래픽=김정훈 기자).
지난달 그는 ‘2025년 문화예술발전 유공 시상식’에서 문화예술 분야 정부 포상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제안이 왔지만, 두 번을 고사하다가 이번에 비로소 수용했다. 황 작가는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와는 늘 거리를 두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계엄 사태가 1년을 넘긴 시점에서 그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며 “기본소득과 일자리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선의의 권력을 계속 창출해내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 명맥이 끊겼던 국제 문학상 ‘로터스(Lotus)상’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황 작가는 “강대국의 패권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문화예술을 세우려는 작가들과 연대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아마도 나의 80대에 벌이는 마지막 사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석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할매’(사진=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