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강원 고성군 일대에서 열린 '인문기행'에 참여한 노숙·자활시설 입소자들이 응봉산을 오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인문기행에 참여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걷는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 것인지 느꼈습니다
지난 8~9일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열린 디딤돌인문학 인문기행에 참여한 한 노숙인 생활시설 이용자의 말이다. 그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앞으로 삶을 더 열심히 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낙오자 없었던 등반…타인과 함께하며 용기 충전
전국 각지 노숙·자활시설 참여자 및 관계자 등 180여명은 8일 오전 고성으로 모였다. 이들은 응봉산을 오르고, 김일성별장을 둘러보며 나들이를 만끽했다.
응봉산은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평소 이동이나 운동이 쉽지 않은 생활자들이 절대 가볍지 않은 코스다. 출발한 지 5분도 안 돼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왔다. '힘들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누군가는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누군가는 앞에서 걸음을 맞추며 마음을 모았다.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딘 결과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정상을 찍었다. 한 참여자는 "정상에 올랐을 때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함께한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8일 강원 고성군 일대에서 열린 '인문기행'에 참여한 노숙·자활시설 입소자들이 응봉산을 오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이날 산행은 단순한 나들이를 넘어 평소 타인과 관계 형성의 어려움을 겪었던 참여자가 서로 연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간이었다.
이날 저녁 숙소 대강당에서는 판토마임 연출가 조성진 씨의 '몸짓 인문학' 강의가 이어졌다. 조 씨는 참여자들을 향해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열리고 표정이 풀렸다.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프로그램이 마칠 때 장내는 정적 대신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적극적인 몸짓으로 프로그램에 임한 한 참여자는 강당을 빠져나가며 "오길 잘했다"고 읊조렸다.
8일 강원 고성군 설악썬밸리골프리조트에서 디딤돌인문학 '인문기행' 첫날 일정으로 몸짓 인문학 순서가 진행되고 있다. 2025.12.8/뉴스1 ⓒ News1 문대현 기자
참여자들이 직접 전한 변화…"난 혼자가 아니야"
이번 인문기행은 9월부터 시작한 디딤돌인문학의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들은 그동안 각 시설에서 글쓰기, 강의 등 집단 체험을 통해 닫혔던 마음을 열고 관계를 회복했다.
한 참여자는 "오랜만에 인문학 강의를 접해 정말 즐거웠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를 마음껏 배웠다. 음악 치료, 자화상 그리기 등 힐링 강의도 좋았다"며 "강의를 들으면 에너지가 생겼고, 그 여운이 오래 남아 삶의 동력이 됐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자는 "글 쓰는 일에 몰입하면서 설렘을 느꼈다. 또 강사님들이 전해주신 감명 깊은 여러 글귀는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고 전했다.
디딤돌인문학을 통해 평소 불안정했던 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고, 다친 마음이 회복됨을 경험한 셈이다.
8일 강원 고성군 일대에서 열린 '인문기행'에 참여한 노숙·자활시설 입소자들이 응봉산 정상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노숙인 생활시설에서 근무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이들은 현실적으로 여행이나 외부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번 기행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기행을 기획한 강사는 "타인과 함께 걷고 듣고 말하는, 누군가에는 사소하고 작은 체험이 노숙·자활시설 입소자들의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울 수 있다"며 "디딤돌인문학 사업을 통해 삶의 큰 위기와 절망을 겪은 사람들이 삶의 의지를 찾고, 사회 복귀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전했다.(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동기획)
eggod6112@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