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별이가 떠올랐다. 일본의 전통문화인 가부키를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외부인과 내부인의 경계를 다루고 있고 예술이 어떻게 그 경계를 뛰어넘는가를 보여주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가부키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야쿠자의 피를 이어받은 기쿠오(요시자와 료 분)와 가부키 명문가의 후계자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갈 곳 없어진 기쿠오는 가부키 명문가로 들어와 슌스케와 함께 최고의 온나가타(여성의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경쟁한다. 재능이 남달라 스승조차 자식인 슌스케가 아닌 기쿠오에게 이름을 물려주려 할 정도지만 외부인이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가부키의 세계는 기쿠오에게 깊은 절망감을 준다. 가부키는 가문의 후계자가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는 보수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슌스케 대신 스승의 선택을 받아 무대에 서게 되지만 긴장감에 손을 덜덜 떨며 분장을 하지 못하는 기쿠오는 슌스케에게 그렇게 토로한다. 그 토로에는 아마도 재일교포로 살아왔던 이상일 감독의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지만 일본인으로 살아온 그가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지녔을 소회가 기쿠오의 절망감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국보’는 기쿠오의 입장에서 외부인이 내부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그리고 있지만 정반대로 슌스케의 입장에서 내부인이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보여준다. 자신이 온당히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나눠야 하고 때론 빼앗기는 상실감도 겪을 수 있다. 내 것의 일부를 내줘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기쿠오와 슌스케는 경쟁하지만 함께 자라며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나눈 사이다. 그러니 현실이 만들어내는 상실감은 그 우정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더더욱 크지 않겠는가.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의 한 장면(사진=NEW)
그렇다면 이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외부인에 그만큼 관대하고 포용적일까. 사회면을 종종 장식하는 외국인 근로자 차별(나아가 폭력까지)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외부인을 들인다는 건 내부인의 나눔과 배려,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안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고무적이다.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환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이지훈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 전체 2위를 차지했고 제레미도 본선 2라운드,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계속 추가 합격해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갔다.
또 ‘국보’는 어떤가. 재일교포 감독이 만들었지만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적어도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가 과거보다는 흐릿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외부인들을 받아들여야 할까.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다’며 벌벌 떨고 있는 기쿠오를 대신해 그 얼굴에 붉은 선을 그어 분장을 해준 슌스케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건 마치 피를 나눠주는 것만 같은 행위가 아니었던가.
8년간 함께 지내다 먼저 떠난 별이가 여전히 그립다.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됐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