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빌라이 칸 (출처: 아라니코, 129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271년 12월 18일,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 쿠빌라이가 마침내 제국의 이름을 '대원(大元)'으로 고치고, 중원 통치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렸다. 이는 유목 국가에서 정주 문명을 아우르는 보편적 제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였다.
쿠빌라이 칸은 조서에서 '주역'의 '대재건원'(大哉乾元, 크도다 건의 으뜸이여)이라는 문구에서 '원'이라는 글자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중국 왕조들이 자신들이 일어난 지명이나 봉호(封號)를 국호로 삼았던 관례를 깨뜨린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로써 쿠빌라이 칸은 스스로를 칭기즈 칸의 정통 후계자인 동시에, 요·금·송으로 이어지는 중원 왕조의 적통 계승자로 규정했다. 이는 한족 지식인층을 포섭하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여, '오랑캐의 지배'라는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결정이었다.
국명 개칭은 몽골 제국 내부의 권력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쿠빌라이는 이미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대도(현 베이징)로 옮기며 한화(漢化)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반발하는 서방 칸국들과의 갈등이 존재했지만, 쿠빌라이는 '대원'이라는 국호를 통해 자신이 전 세계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당시 원나라는 남송과의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국호 변경은 남송 국민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제국 내 한인 장병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여 전쟁의 승기를 굳히려는 목적도 있었다. 쿠빌라이 칸은 1276년 마침내 남송의 수도 임안을 함락시켰고, 1279년에 애산 전투에서 남송의 잔당들을 제압해 완전히 남송을 멸망시켰다.
'원'이라는 거대 제국은 주변국들과도 새로운 외교 관계를 설정하게 됐다. 유목민의 기상에 중원의 통치 시스템을 결합한 '원나라'의 탄생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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