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관자 한일전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12월 18일, 오전 07:00

전호제 셰프

요즘 바다를 둘러싼 각국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조금이라도 많은 수역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뉴스거리를 만든다. 바다에서 얻는 수산물에서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강점이 있는 수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각종 국제행사에 선보이기도 한다.

여러 수산물 중에서 관자는 이런 홍보전의 한가운데에 있다. 관자는 조개에서 양쪽 껍질을 닫는 근육을 말한다. 이 부위의 맛이 좋아 따로 모아서 판매된다. 지난 10월 APEC 경주에서는 고흥 지역 관자를 새우, 전복과 함께 전채 요리로 만들었다. 관자가 생산되는 여러 지역 중 고흥은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오찬 메뉴. 왼쪽부터 신안 새우와 고흥 관자, 완도 전복 등 우리 해산물에 트럼프 대통령의 고향인 뉴욕의 성공 스토리를 상징하는 '사우전드아일랜드' 드레싱이 곁들인 전채요리, 경주 햅쌀로 지은 밥과 공주밤, 평창 무·당근, 천안 버섯, 미국산 갈비를 사용한 갈비찜, 'PEACE!'(평화!)를 레터링한 감귤 디저트.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주 APEC에서 관자로 만든 전채 요리 선보여
2023년 11월 APEC CEO 서밋에서는 일본 정부 기관이 홋카이도 가리비 시식 행사를 벌였다. 일본 홋카이도 가리비 관자는 전 세계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에 지역 이름을 기재할 정도로 품질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해산물과 달리 관자류는 나라별로 호불호가 크지 않고 비린 맛이 없다. 또 고급 식재료로 인정받기에 홍보하기 좋은 수출 상품인 셈이다.

일본 가리비 관자는 내가 뉴욕에 있던 식당에서도 생물로 받아 사용하곤 했다. 당일 새벽 주방에 와서 손질되면 바로 조리 주방에서 구이나 전채요리로 사용했다. 얼마나 신선했는지 관자를 가로로 썰어보면 파르르 떨리는 단면이 보일 정도였다.

신선함과 더불어 다른 재료와 잘 어울려 고급 요리에 적당하다. 레몬, 트뤼프, 크림, 해조류 등 다양한 식재료와같이 조화로운 맛을 낸다. 냉동과 더불어 생물로 유통하는 면에서 수요도 상당하다.

국내에서 양식한 활가리비. /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홋카이도산 가리비 관자
우리나라에서도 홍가리비가 양식되고 있다. 가끔 수산물 코너에도 볼 수 있는데, 가리비 속에 관자를 품고 있지만 일본산 가리비에 비해 크기는 작은 편이다. 주로 매운탕이나 굽기에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리비보다는 키조개가 경쟁력이 있다. 커다란 검은 껍질을 가지고 있어 조개구이나 해물탕 요리에서 푸짐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나오는 관자의 크기는 일본산 가리비 관자에 뒤지지 않는다. 보통 냉동 해산물은 1㎏에 몇 개가 들어가는 것으로 표기한다. '11/15 1㎏'이라는 표기는 1㎏ 포장에 11개에서 15개의 관자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키조개와 가리비는 적정 수역 온도에 차이가 난다. 키조개는 13~14도에 잘 자라지만 가리비는 7~10도로 더 낮은 온도가 적당하다. 두 조개의 관자는 일견 거의 유사해 보이지만 조리법은 다르게 해야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먼저 가리비 관자는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하다. 통으로 구워도 질겨지지 않아 작은 스테이크를 굽듯이 요리할 수 있다. 굽기 전에 물기를 제거하고 양면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해준다. 달궈진 팬에서 양쪽을 살짝 익혀주고, 크기가 크다면 버터를 넣어 천천히 관자에 끼얹어 준다. 간단하게 불을 줄이고 뚜껑을 살짝 덮어 줘도 된다.

키조개 관자는 통으로 크게 익히는 것보다는 얇게 저미거나 조금 두껍게 썰어 격자로 칼집을 넣어준다. 키조개는 많이 익히면 질겨지니 센불에 살짝 열을 가하는 게 맛의 포인트다. 끓이는 국물에 넣는다면 빠르게 건져낸다.

키조개를 소개하는 모델. /뉴스1 ⓒ News1

가리비와 키조개 관자, 비슷하지만 요리법 달라
두 가지 관자 모두 크기별로 냉동 제품이 있어 특별히 계절을 타지 않는다. 냉동의 경우 1㎏당 개수가 적을수록 크기가 큰 것이다. 키조개는 얇게 저며서 바로 사용하기 좋은 제품도 나와 있다.

비슷하면서 다른 키조개와 가리비 관자는 한국과 일본 사이를 닮았다. 부드러운 가리비 관자는 마치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 느껴진다. 단단하지만 깊은 단맛을 가진 키조개 관자는 한국인의 속 깊은 속정 같기도 하다.

홋카이도산 가리비 관자처럼 우리의 키조개 관자도 지역 이름이 표기돼 해외 레스토랑 메뉴에 넣을 수 있을까. 한국의 김처럼 관자 맛이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좁은 바다를 경계로 하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opini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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