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피아프 (출처: Studio Harcourt,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로 칭송받는 에디트 피아프가 파리의 빈민가 벨빌에서 태어났다. 본명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인 그는 비극적인 유년 시절과 파란만장한 삶을 극복하고 프랑스의 문화적 아이콘이 된 인물이다.
피아프의 시작은 초라했다. 거리의 가수였던 부모 밑에서 태어나 영양실조와 시력 상실의 위기를 겪으며 길거리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935년, 카바레 주인 루이 르플레에게 발굴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작은 체구와 대비되는 폭발적인 성량 덕분에 '작은 참새(La Môme Piaf)'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곧 그의 예명이 됐다.
피아프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인 연애와 삶의 고통을 가사에 녹여내어 '샹송'이라는 장르를 전 세계적인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표곡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다.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내어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긍정했던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곡이다.
그는 이브 몽탕, 샤를 아즈나부르 등 후배 가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프랑스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포로수용소에서 공연하며 유대인 예술가들을 돕는 등 사회적 실천에도 앞장섰다.
142cm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처절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전 세계인에게 위로를 건넨다. 1963년 4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프랑스 문화의 정수로 남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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