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테오리아 제공)
동아시아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고(故) 힐러리 콘로이의 역작이 국내 출간되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을 단순한 양국 관계가 아닌 국제 정치의 역학 구조 안에서 파헤친다.
40년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동아시아사를 연구한 저자는 1868년 메이지 유신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역사를 세밀하게 추적하며 일본의 조선 강점 과정을 새롭게 분석한다.
저자는 당시 일본의 주요 세력을 현실주의,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반동주의적 이상주의로 분류하고, '국익'을 앞세운 현실주의 외교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잔인한 침략으로 변질됐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콘로이는 일본의 조선 강점을 현실주의 외교의 성공이 아닌, 파국으로 치달은 '실패'로 규정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흥미롭다. 그는 국가가 자신의 이익만을 영리하게 추구하는 단계를 넘어, 정의와 도덕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이상주의의 함정을 극복한 이른바 '꾸준한 이상주의'가 그것이다. 만약 당시 강대국들이 조선인에게 무엇이 옳은지에 관심을 두고 '꾸준한 이상주의'를 적용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설은 뼈아픈 시사점을 던진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잘못된 역사의 반복은 막을 수 있다. 신냉전의 파고가 높은 21세기 한반도에서 열강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묵직한 통찰과 해법의 단초를 제공한다. 70년 전 쓰인 이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 되는 이유다.
△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힐러리 콘로이 글/ 김범 옮김/ 테오리아/ 3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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