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정승우 기자] 한국체육대학교 허진석 교수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스포츠 이벤트를 역사·문화적으로 고찰한 에세이집 『지중해의 영감』을 출간했다.
허 교수는 『지중해의 영감』에서 특히 올림픽의 정치적 함의에 주목하고, 권력과 메시지 등을 키워드로 담론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해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올림픽은 정치적이다. 아니, 올림픽은 정치이다. 정치, 경제, 민족주의, 패권주의의 뒤범벅이며 욕망이 격돌하는 전장이다. 모든 올림픽이 형제처럼 닮았다. 올림픽은 선언하고 웅변한다. 메시지는 화려한 개막행사에 집약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근대화를 완수했다는 ‘중진국’의 선언이기 이전에 군사독재 정권의 마지막 노래였다.(141-142쪽, 개막식과 프로파간다)
이 책은 30여 년 동안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거친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취재경험과 학문적 탐구의 결과를 갈무리하고 결산하는 의미가 있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모두 수용한 결과 올림픽과 같은 주제에서 주장과 관점이 반복되는 이유다. 그러나 입체적인 관점에서 스포츠를 문화로서 우리 근대사의 맥락에 수용한 미덕이 뚜렷하다.
동대문운동장과 장충체육관에 대한 서술은 개발도상국-중진국-선진국의 단계를 거쳐 온 대한민국의 숨 가쁜 여정을 시정 넘치는 전개 속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현장 기자 시절부터 문학적 표현이 풍부한 기사를 쓴 허 교수는 동국대학교 국문과 재학 시절 문단에 오른 시인이기도 한데, 이런 특징이 기사와 칼럼에서 잘 드러난다.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개발도상국의 저녁은 일찍 시작되었다. 어둠은 이내 깊고 밤은 고요했다. 먹물에 잠긴 듯, 눈을 크게 떠도 사위엔 어둠 뿐. 소년은 아버지가 라디오를 켜는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났다. ‘웅-’하는 잡음. 곧 이어 약간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비율빈의 수도 마닐라입니다….”먹물에 잠긴 듯한 어둠, 비율빈에서 한국까지의 가없는 거리, 말 없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공감. 그리고 이제 삶과 죽음의 거리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영겁 같은 그 거리도 언젠간 지워지리라.(91-92쪽, 체육관과 운동장)
필자는 ‘이 책의 성격은 자서전과 같으며, 스포츠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이벤트들은 삶의 마디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대회 하나를 치를 때마다 성장했거나 최소한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 절반, 기자 절반 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본질’을 성찰한다. 그러면서 스포츠 기자로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정산하고 있다. /reccos23@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