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나답게"…'영원한 아그네스' 윤석화가 남긴 어록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5년 12월 19일, 오후 04:44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영원한 아그네스’ 배우 윤석화가 별세했다. 향년 69세.

19일 한국연극배우협회에 따르면 윤석화는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중 이날 오전 9시 53분께 세상을 떠났다.

윤석화는 건강이 크게 악화한 뒤에도 끝까지 무대를 향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2022년 10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그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이듬해, 연극 ‘토카타’에 약 5분간 특별 출연하며 관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선배 배우 손숙의 연극 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고, 짧은 등장이었지만 무대를 향한 그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무대는 윤석화의 배우 인생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과 뮤지컬을 중심으로 드라마와 영화까지 폭넓게 활동했다. 무엇보다 관객과 숨결을 나누는 공연 무대를 자신의 집처럼 여긴 배우였다. 2000년대 대학로에서 여성 배우 중심의 연극 흐름을 이끌었고, 1세대 뮤지컬 배우로서 국내 창작·번역 뮤지컬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말들은 무대 위에서뿐 아니라 삶의 끝자락에서도 그가 어떤 배우였는지 또렷이 보여준다.

배우 윤석화의 빈소가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사진=연합뉴스).
◇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다”

윤석화는 2023년 8월 여성지 우먼센스 인터뷰에서 뇌종양 투병 사실을 처음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2022년 연극 ‘햄릿’ 공연을 마친 뒤 영국 출장 중 쓰러져 급히 귀국했고, 뇌종양 발견 후 2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후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윤석화는 “병원에서 삶을 연명하는 건 나답지 않다”며 “일주일을 살더라도 나답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 “뇌종양이라니,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이 발언은 2023년 10월 채널A 인터뷰에서 나왔다. 뇌종양 수술 이후 첫 방송 출연이었다. 윤석화는 병을 알게 된 순간을 회상하며 “조금 기가 막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거나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조적인 태도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 “미워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항암 치료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했다. 방사선 표적 치료로 몸무게가 36㎏까지 줄었고, 병원에서 맞는 주사로 고통 속에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그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매일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겠는가”라면서 “하루를 살아도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고 전했다.

◇ “연극은 내게 가장 진실한 것입니다”

윤석화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연극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202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이 가장 진실한 예술이라면, 나에겐 연극이 그렇다”며 “연극은 답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작업이며, 그 질문이 자신을 배우이자 인간으로 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무대를 꿈꾸는 배우였다.

◇ “그게 멋있게 사는 거예요”

윤석화는 2023년 우먼센스 인터뷰에서 ‘멋있게 산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그는 멋을 돈이나 성공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윤석화는 “(멋있게 산다는 건) 생각의 문제이고, 자세의 문제”라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책 한 권, 시 한 편을 사유할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진 삶”이라고 덧붙였다.

고(故) 배우 윤석화(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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