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왕' 에드워드의 비원 웨스트민스터 사원 축성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5년 12월 28일, 오전 06:00

웨스트민스터 사원 (출처: UnknownUnknown Scanned by Leonard Bentley from Iden, East Sussex, UK,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065년 12월 28일, 템스강 변의 척박한 늪지 '손니 섬'(Thorney Island)에 세워진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성 베드로에게 헌정되며 장엄한 축성식을 마쳤다. '참회왕' 에드워드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었다.

축성은 에드워드 국왕이 과거 로마 순례를 떠나지 못한 것에 대한 신앙적 참회에서 시작됐다. 국왕은 로마 방문 대신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재건하고 성 베드로에게 헌정하겠다는 교황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40년대부터 이 대공사를 주도했다.

재건된 사원은 기존의 앵글로-섹슨식 목조 건축을 압도하는 노르망디 풍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거대한 십자가형 평면과 견고한 석조 기둥, 그리고 높은 아치형 천장은 유 대륙의 선진 문명을 잉글랜드 땅에 이식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종교적 공간을 넘어, 에드워드 국왕이 지향했던 '문명화된 왕국'의 위엄을 시각적으로 선포한 것이었다.

축성식은 환희와 슬픔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사원 건립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에드워드 국왕은 건강 악화로 인해 정작 본인이 세운 성전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대신 에디스 왕비와 고위 귀족들이 참석하여 예식을 진행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축성은 잉글랜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국왕은 이를 통해 잉글랜드 교회를 대륙의 가톨릭 체제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했다. 또한, 후계자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거대한 사원은 차기 권력을 향한 명분 싸움의 중심지가 됐다.

국왕의 위중한 병세는 사원 내부에 무거운 침묵을 드리웠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육중한 석조 벽은 축성되자마자 국왕의 안식처이자 장지가 될 운명에 직면했다. 이날 뿌려진 성수는 이 성소가 잉글랜드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거행될 불멸의 전당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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