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돌산공원에서 본 일몰
◇해가 녹아들면 잠에서 깨어나는 여수
여수의 일몰 아래 펼쳐진 남해와 돌산대교
돌산공원은 여수 도심 속 일몰 여행의 중심지다. 저녁 무렵 대략 해발 100m 남짓한 공원 전망대에 오르자 멀리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파도 위를 떠다니는 듯하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자 시간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과연 올해 나의 시간도 저렇게 뜨겁게 타올랐던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잠깐 한눈을 판 새 바다는 해를 삼켜버렸다.
어둠이 깃든 돌산대교는 서서히 빛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50가지 색으로 바뀌는 돌산대교의 조명은 밤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쉼 없이 색을 바꾸며 여수의 밤을 수놓는 다리는 야간 여행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낭만포차거리 인근 방파제에 서 있는 하멜등대
거북선 대교 쪽으로 걷다 보면 온몸을 붉게 물들인 하멜등대가 나타난다. 여수구항 방파제 끝에 세워진 높이 10미터 남짓의 등대는 17세기 조선에 머물렀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인생 조각을 담고 있다.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던 하멜은 1653년 제주도 인근에서 난파된 뒤 조선 곳곳을 전전하다 약 13년 만에야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여수는 하멜의 긴 여정 중 ‘결말 무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여수시는 하멜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동문동·종화동 인근을 ‘하멜로’로 지정하고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에는 하멜등대도 세웠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의 시선이 닿았을 여수 앞바다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다가오는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붉은 등대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하멜의 기억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다.
붉은 하멜등대
이순신 장군이 해전을 준비하던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진남관
그 중심에 선 건물이 진남관이다. ‘남쪽 왜적을 진압해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은 진남관은 2015년부터 10년 간의 대규모 해체·보수 끝에 올해 국보다운 위용을 되찾았다. 진남관의 야간 특별 개장이 있던 날, 현장을 안내하던 문화관광해설사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우다 스러져간 여수 사람들의 공로를 전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 뒤에는 언제나 여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장군께서 한산도에 계시다가 모함을 받아 한양으로 끌려가고, 그 자리를 원균이 대신하면서 훗날 칠천량 해전에서 큰 패배를 겪게 됩니다. 그때 젊은 수군이 1만 명이나 전사했는데, 여수 청년들이 참 많이 섞여 있었어요.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 26만 명인 여수 인구가 아마 40만 명은 쉽게 넘지 않았을까요?”
진남관의 야경
다시 만난 야간의 진남관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오랜 세월을 버틴 기둥과 지붕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이 땅을 피로 지켜온 영웅들에 바치는 무언의 헌사처럼 다가온다. 내년에도 ‘여수 국가유산 야행’을 통해 장엄한 진남관의 야경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이순신 광장 앞 교차로에 있는 충무공 동상
이순신 광장에 있는 거북선
스카이타워에서 내려다 본 여수세계박람회장 입구
2012년 엑스포 개최 당시 총 820만 명의 인파가 방문했던 박람회장은 여수 발전의 한 획을 그은 공간으로 남아 있다. 전시관 앞에서 몇 시간씩 섰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박람회장은 너른 품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노을 진 여수 바다에 흘려보낸 을사년의 태양은, 내일이면 병오년의 희망을 품고 떠오를 것이다. 어둑한 바다와 대비를 이룬 여수 박람회장의 불빛은 다가올 날들을 환하게 비춰주는 듯 오래도록 시선을 붙들어 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