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미술계’ 한 장면①] 단일 전시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론 뮤익’ 전 전경. 4∼7월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이어간 전시기간 동안 53만 3035명이 들렀다. 단연 크기로 압도한 한 점은 ‘침대에서’(2005)였다. 심란한 표정으로 한 손을 턱에 괴고 침대에 누운 한 여인을 옮긴 작품은 길이 650㎝, 폭 395㎝, 높이 162㎝에 달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극명하게 분위기가 갈린 이 풍경은 ‘2025년 대한민국 미술계’라는 그림에서 나왔다. 정상적인 형태라면 보통은 한 톤이어야 한다. 밝은 톤이든 어두운 톤이든. 그런데 한 화면에서 말이다. 장밋빛과 회색빛이 공존한 모양새니 희한하다고 할 수밖에. 이쯤 되면 ‘동종업계’라는 말을 쓰는 것도 어색할 지경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이 ‘투 톤’은 작품전시장과 작품판매장, 두 영역을 가른 것만도 아니었다. 전시 중에서는 블록버스트급 전시의 흥행이 도드라졌고, 판매 중에서는 수십억원대의 최고가 작품이 시장을 이끌었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선명했던 한 해였단 얘기다.
①앞다퉈 관람객 수 발표…국립현대미술관 웃었다
사실 연초부터 예상은 했던 일이다. 유독 시선을 끄는 대형전시에 대한 예고편이 넘쳐났더랬다. 겸재 정선(1676∼1759), 마르크 샤갈(1887∼1985),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김창열(1929∼2021), 론 뮤익(67), 마크 브래드포드(64), 이불(61) 등 이름만으로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거장의 행렬이었다. 게다가 고전부터 근대를 찍고 현대에 가닿은 고른 분포도 얘깃거리가 됐다. 결과는 예상대로 이어졌다.
[‘2025년 미술계’ 한 장면②]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의 70여년 작품세계를 좇는 대규모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전 전경. 일생을 짓누른 증오·분노·우울 등을 조각·회화·설치작품 등에 녹여내며 되레 트라우마에 손을 내밀었던 작가다.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설치된 부르주아의 걸작 중 청동조각 ‘웅크린 거미’(2003). 부르주아가 제작한 퍼포먼스 영상(1978)을 배경으로 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관람객 수를 집계한 뒤 떠들썩한 자축을 벌인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2025년 한 해 관람객 수 337만명을 넘기며 “개관 이래 최다”라고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15%가량 증가했다. 흥행을 이끈 전시는 ‘론 뮤익’ 전. 53만 3035명이 봤다. 사실 수치로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압도적이다. 역시 개관 이래 처음으로 ‘한 해 관람객 600만명’을 넘기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케데헌’ 열풍을 제대로 탔다. 뮷즈(뮤지엄굿즈)를 사기 위해 오픈런 하는 진풍경까지 끌어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기획전 없이 만든 성과라 ‘전시’로 볼 땐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열심히 따져보지 않아도 흥행전시 면면에선 ‘자본’의 향기가 풍긴다. 비용을 들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낸다는 암묵적 공식을 확인했던 것도 2025년 전시풍경의 일부다.
[‘2025년 미술계’ 한 장면③]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꼽히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떠오르다’(Float 2019) 부분.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스픽미술관 전시장의 한 바닥 전체를 덮은 회화설치작품이다. 거리에서 주은 전단지·포스터·신문지 등을 긴 띠로 잘라내고 노끈으로 이어냈다. ‘본다’를 넘어 ‘밟고 걸어야’ 감상했다고 할 작품은 ‘계속 걷다’란 뜻의 ‘킵 워킹’(Keep Walking)이란 전시 타이틀과 이어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북적거리는 전시장과는 달리 미술작품을 팔고 사는 현장에는 한 해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작품이 팔릴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갤러리·아트페어 관계자들에게 ‘올해 매출’을 물었더니 응답자(154명) 중 절반 가까이(48.4%)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고 대답했다(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 미술시장 결산 및 2026년 전망’). “증가!”를 외친 응답자는 10%도 채 안 됐지만(9.7%) 그 증가도 대단하지 않다. 1억~10억원 사이의 매출이 60%라니 말이다.
체감하는 미술시장은 여전히 바닥이지만 그나마 경매시장의 수치가 가까스로 오름세를 탔다. 서울옥션·케이옥션을 포함해 국내 8개 경매사가 2025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온·오프라인 미술품 경매의 낙찰총액은 1405억원(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2025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지난 5년간 뚝뚝 떨어지기만 하다가 간신히 유턴해 끝자락에 안착한 거다. 2024년(1151억원)보다 254억원이 증가했지만 2023년(1535억원)에는 못 미친다. 호황 붐을 타고 최고점을 찍었던 2021년(3294억원)에 비하면 43% 수준이다.
[‘2025년 미술계’ 한 장면④] 11월 서울 강남구 서울옥션 ‘이브닝 세일’ 에서 마르크 샤갈의 ‘꽃다발’(Bouquet de Fleurs 1937, 100.4×73.2㎝)이 낙찰되는 순간. 94억원을 부른 새 주인에 안긴 ‘꽃다발’은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등극했다. 같은 날 함께 출품한 샤갈의 또 다른 작품 ‘파리의 풍경’(Paysage de Paris 1978)은 59억원에 낙찰됐다(사진=서울옥션).
물론 끝없던 침체기를 벗긴 수치만으로도 기대를 키운다. 출품작은 떨어졌지만(1만 8339점, 2024년 2만 2934점) 낙찰률이 상승한 점도 고무적이다(53.42%, 2024년 46.40%). 하지만 아직 장담은 어렵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초고가 작품 몇 점이 팔린 것으로 미술시장 회복세를 진단하는 건 섣부르다”며 못을 박았다. “결국 중저가 작품에 대한 관심과 판매가 이후 판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③키아프, 프리즈 5년 연장에 안도…여전한 과제에 답 찾아야
한 해 중 가장 떠들썩하게 치러지는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 2025’와 ‘프리즈서울 2025’가 약속한 공동개최 5회 중 4회째 행사를 치렀다.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키아프는 8만 2000여명,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는 7만여명의 관람객을 맞았다. 2024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후 관심은 2022년 ‘키아프리즈’로 처음 손을 잡은 두 페어가 계약을 연장할 것인가의 여부에 모아졌더랬다.
[‘2025년 미술계’ 한 장면⑤] 9월에 열린 ‘2025 키아프리즈’ 중 ‘프리즈 서울’ 전경. 한 관람객이 하우저앤워스 부스에 걸린 조지 콘도의 ‘퍼플 선샤인’(Purple Shunshine, 2025)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이 작품은 120만달러(약 16억 7000만원)에 판매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프리즈보다 마음이 급했던 키아프는 일단 안도하는 눈치다.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내 갤러리와 작가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과제는 여전하다. 지난 4회차를 통해 얼추 겉모양은 갖췄으나 ‘프리즈와 체급 차 극복’은 큰 숙제라서다. 사실 수십∼십수억원에 달하는 고가작품의 거래는 거의 프리즈에서 이뤄졌으니까. “프리즈와 협업으로 되레 한국 미술시장의 정체성을 잃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에도 뾰족한 답도 찾아내야 한다.
2025년과 2026년이 갈라지는 길목에서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한다. “불황이 이어진다, 아니다를 가늠할 확실한 신호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며 “2026년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