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100만원 쓸 때 28만원 써”…소득에 갈린 여행 계급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1월 07일, 오후 10:34

대국민 설문조사의 소득별 국내 숙박여행 횟수 예측 (사진=한국문화관광연구원 ‘국민 국내관광 심층분석 및 정책 대응방향’ 정책연구)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여행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이 한 번 여행에 100만 원을 쓸 때 저소득층은 28만 원을 쓰는 데 그쳐, 소득에 따른 ‘휴식의 격차’가 3.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국내관광 심층분석 및 정책 대응방향 정책연구’(류광훈·김형종)에 따르면 소득·연령·학력 등 집단별로 여행 행태에 차이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 상위 20% 고소득층의 연간 국내 숙박 여행 횟수는 3.5회로, 저소득층(2.3회)보다 1.5배 컸다. 학력에 따른 지출 격차도 4배를 넘는다. 대졸 이상 학력자의 1인당 지출액은 99만 6000원, 초졸 이하는 23만 3000원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여행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도 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고소득·고학력층은 ‘시간 부족’을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월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의 44.2%가 시간 부족을 호소했다. 장시간 근로와 낮은 휴가 사용률이 발목을 잡았다. 저소득·고령층은 건강 문제와 경제 부담이 주요 제약 요인으로 분석됐다. 100만원 미만 가구에서는 건강 문제(25.8%)와 경비 부족(10.5%)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았다. 70세 이상 고령층도 건강 문제(21.4%)를 가장 큰 제약으로 꼽았다.

근로시간별 소득과 가구당 여행 횟수의 관계 (사진=한국문화관광연구원 ‘국민 국내관광 심층분석 및 정책 대응방향’ 정책연구)
주목할 점은 고소득층에서 나타난 ‘역U자형’ 여행 패턴이다. 통상 소득이 높을수록 여행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분석 결과는 달랐다. 저소득에서 중간 소득 구간까지는 소득 증가에 따라 여행 횟수가 늘었으나, 일정 소득을 넘어서자 오히려 여행 횟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포착됐다. 원인은 소득과 근로시간의 동반 상승이다. 소득 1분위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29시간인 반면, 5분위는 39시간으로 10시간가량 길었다.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 일수도 1분위 2.9일, 5분위 6일로 두 배 이상 벌어졌다. 고소득층은 경제력은 갖췄지만 정작 여행에 쓸 시간이 부족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소득 지원만으로 국내여행이 활성화된다는 가정이 틀렸음을 보여준다”라며 “저소득층에는 경제 지원, 고소득층에는 시간 확보 정책이 각각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국내여행 활성화 정책이 계층별로 다른 처방을 담은 ‘정책 묶음’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소득·장시간 근로 가구에는 총소요시간 단축과 일정 간소화 같은 시간 비용 저감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는 환승 최소화, 픽업 서비스, 원스톱 예약 시스템 구축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공항·KTX역에서 숙소까지 직행 셔틀을 운영하거나, 교통·숙박·체험을 하나의 앱에서 예약·결제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구축도 해결 방안으로 거론됐다.

저소득 가구에는 ‘복지 관광’ 확장이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특히 현재 시행 중인 근로자 휴가지원사업 대상 확대가 제안됐다. 현재 중소기업 근로자 중심인 지원 대상을 대기업·공공부문까지 넓히고,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평가 연계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은 기업과 근로자가 여행경비를 각각 절반씩 적립하면 정부가 일정 금액을 추가 지원하는 구조다.

연구에 참여한 김형종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한된 예산 안에서 국내 여행 산업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시간 제한’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고 제언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고소득층은 제한된 시간 안에 질적으로 높은 여행 경험을 선호한다”며 “이들의 시간 부담을 줄일 경우 여행 소비도 덩달아 큰 폭으로 늘어나 지역 경제 파급효과도 더 커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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