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품은 겨울산의 미학"…유현경 '지워지고, 떠오르는'전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1월 09일, 오전 07:40

'Erased, Emerged : 지워지고, 떠오르는' 유현경 개인전 포스터 (이스랏아트룸 제공)

겨울은 만물이 정지한 계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장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 응축돼 있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가 드러나듯, 화가 유현경은 겨울 산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펼쳐낸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갤러리 이스랏아트룸에서 열리는 유현경의 개인전 '이레이즈드, 임머지드(Erased, Emerged: 지워지고, 떠오르는)'은 작가의 깊어진 회화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지워진 것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본질을 마주하게 하는 이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중심축은 최근 풍경 회화를 대표하는 두 작품, '설산'과 '윈터링'(Wintering)이다. 두 작품은 산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다루지만, 그 방식과 에너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유현경, 설산, 2024, 캔버스에 유채, 124x98.5cm (이스랏아트룸 제공)

'설산'은 세로로 긴 화면 속에 반복된 덧칠과 지움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는 단순히 산의 형상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대상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과 사유를 응축시킨 결과물이다. 붓질의 층위는 풍경을 설명하기보다 사라진 감각의 흔적을 증언한다.

'윈터링'은 가로로 뻗어 나가는 시원한 붓질이 압도적이다. 안료가 흘러내린 자국과 거침없는 색의 흐름은 겨울을 '정지'가 아닌 '생동하는 리듬'으로 재해석한다. 산은 고정된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폭발하듯 확장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

유현경의 산은 외부의 자연을 똑같이 베낀 것이 아니다.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수행적 과정 속에서 장소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객의 기억과 정서가 스며든다. 초상화와 인물화로 화단의 탄탄한 지지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 풍경 작업을 통해 회화적 행위 자체가 어떻게 내면의 풍경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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