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외젠 오스만(출처: Unknown. Stitch and restoration by Jebulon, 2013,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91년 1월 11일, 현대 도시계획의 기틀을 마련한 조르주외젠 오스만이 세상을 떠났다. 나폴레옹 3세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근대 도시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급격한 인구 증가와 낙후된 시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은 위생 관리가 불가능해 전염병의 온상이 됐고, 잦은 시민 봉기 시 바리케이드를 치기 좋은 구조였다. 1853년 센강의 지사로 임명된 오스만은 '파리 개조 사업'을 통해 이 모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오스만의 업적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대직로'의 건설이다. 그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넓고 곧은 도로를 개척하여 공기의 흐름과 햇빛의 유입을 유도했다. 이는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확산을 막는 위생적 조치였다. 또한,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망은 도시의 연결성을 극대화했으며,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치안 유지에도 기여했다.
건축적 통일성 또한 그의 집념이 낳은 결과다. 오스만은 도로변 건물의 높이와 외관 규격을 엄격히 제한하여, 특유의 크림색 석조 외벽과 망사르드 지붕이 늘어선 고유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와 더불어 블로뉴 숲, 뱅센 숲 등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정비하여 도시의 생존 능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사업은 수많은 역사적 유적을 파괴하고 막대한 부채를 남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오스만이 구축한 도시 모델은 이후 바르셀로나, 비엔나 등 유럽 주요 도시와 워싱턴 D.C. 등 전 세계 도시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스만이 설계한 직선의 미학과 공공 위생의 원칙은 130년이 지난 지금도 파리의 거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단순한 행정가 이상으로, 혼돈의 도시를 질서 정연한 문명의 상징으로 승화시킨 예술가이자 공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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