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축제 공동체, 문화가 되고 산업이 되다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1월 11일, 오전 11:09

[오제열 문화연출감독(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총감독)] 최근 축제 현장과 정책 담론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화두는 ‘축제의 산업화’와 ‘글로벌 축제로의 도약’이다. 축제를 단순한 지역 행사나 관광 프로그램에 머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로 육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오제열 문화연출감독
대한민국 축제가 산업으로 확장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진정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관람객 수를 늘리거나 프로그램을 화려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축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축제 공동체’에 있다.

필자가 말하는 ‘축제 공동체’란 축제 정체성에 공감하는 기획자와 예술가, 지역 주민과 행정, 그리고 관람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가치와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많은 축제가 시민 참여를 강조하지만 참여 자체가 목표가 될 경우 축제는 일회적 경험으로 끝나기 쉽다. 반면 축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단순한 참여 집단을 넘어선다. 축제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며 준비 과정부터 실행 이후의 성찰과 개선까지 함께 책임지는 문화적 주체다. 이들은 반드시 지역 주민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특정 문화와 축제의 정체성에 공감해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외부 인력 또한 중요한 구성원이다. 이들이 축제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 자리할 때 축제는 공동체의 경험과 관계가 축적되는 문화 자산으로 성장한다.

해외 사례는 이러한 구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리우 카니발’은 세계 최대 규모의 축제이자 거대한 문화 산업이지만 그 중심에는 삼바 학교라는 축제 공동체가 있다. 삼바 학교는 단순한 공연 단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 참여자들이 연중 활동하며 음악과 춤, 의상과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지역의 일상에서 출발해 세계로 확장됐고 삼바 문화는 교육과 공연, 관광과 콘텐츠 산업으로 이어졌다. 리우 카니발의 글로벌 경쟁력은 화려한 퍼레이드보다 축제를 일상 속에서 지속시키는 공동체 구조에서 비롯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역시 축제 공동체가 산업으로 확장된 대표적인 사례다. 에든버러의 축제는 전 세계 예술가와 기획자 그리고 관객이 반복적으로 결합하며 형성된 국제적 축제 공동체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이 축제는 예술 교류의 플랫폼이자 새로운 창작과 협업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기능하고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산업 생태계로 확장시켰다. 축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세계와 연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의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축제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행사는 서울·경기·수원·화성 등 여러 지자체와 다양한 참여 주체가 하나의 역사 서사를 공유하며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축제 구조를 갖고 있다. 시민 배우를 중심으로 군부대, 대학생 참여단, 어린이 행렬단, 전통공연 단체, 예술가들이 역할별로 결합하면서 문화 공동체로 발전해왔다. 서로 다른 지역과 집단이 ‘능행차’라는 공동의 서사를 통해 연결되면서 축제는 특정 지역이나 세대에 한정되지 않는 열린 문화로 확장된다.

이처럼 축제 공동체는 문화의 힘을 만들어낸다. 축제를 준비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문화는 쌓이고 그 문화는 콘텐츠가 되어 산업으로 확장된다. 결국 축제 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화려한 무대나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며 축적된 사람들의 관계와 경험이다.

대한민국 축제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축제 공동체가 차분히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축제를 통해 만나고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쌓일수록 그 관계는 문화가 되고 축제는 산업으로 성장한다. 이제 축제 정책도 수치적 결과만이 아닌 과정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축제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