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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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26년 1월 13일, 오전 06:00

에드먼드 스펜서 (출처: Author Edmund Spenser, Publisher W. P. Hazard, 1857,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599년 1월 13일,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영국 문학의 거성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영어의 예술적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후대 문인들에게 영감을 준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린다.

1552년경 런던에서 태어난 스펜서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고전 문학을 섭렵했다. 1579년 발표한 '목동의 일기'는 첫 성공작이다. 그는 12개월을 주제로 한 이 목가시집에서 고어와 방언을 혼용하는 실험적 시도를 통해 초서 이후 정체됐던 영국 시단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생애 최고 업적은 단연 서사시 '요정 여왕'(The Faerie Queene)의 집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기독교적 덕목과 기사도 정신을 투영한 거대한 우의적 서사시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9행시 형식의 '스펜서 연조'를 창안했다. 이는 훗날 바이런, 키츠 등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계획한 12권 중 6권만 완성됐으나,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영국 민족주의를 결합한 불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문학적 성취와 달리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행정관으로 재직하며 소네트 연작 '아모레티'와 결혼 축시 '에피탈라미온' 등 서정시의 정수를 남겼으나,정치적 격변이 발목을 잡았다. 1598년 '9년 전쟁' 중 거처인 킬콜먼 성이 전소되고 자녀를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런던으로 피신했으나 빈곤과 상심 속에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숨을 거두었다.

스펜서는 평소 존경하던 제프리 초서의 곁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코너'에 안치됐다. 그는 영어를 세련된 예술 언어로 격상시켰으며, 상상력과 도덕적 서사를 결합한 그의 기법은 영국 문학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겼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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