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출처: Commons member Amadscientist created the file from the book by William Smith, Abel Hendy Jones Greenidge, Andrew Dickson White, 1899,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원전 83년 1월 14일, 로마의 명문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앞당기고 클레오파트라와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다. 그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거침없는 성격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결국 권력 투쟁의 패자로 생을 마감했다.
안토니우스는 유력한 정치가 집안 출신이었으나 청년기는 방탕했다. 빚더미에 앉기도 했던 그는 그리스로 건너가 수사학과 군사학을 공부하며 반전을 꾀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휘하에 들어간 것이다. 갈리아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그는 카이사르의 가장 신뢰받는 부관으로 성장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안토니우스는 혼란에 빠진 로마의 중심에 섰다. 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대립했으나, 결국 레피두스를 포함한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해 정적들을 숙청했다. 이 시기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동방 영토를 관할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동방을 통치하던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는 로마의 전통을 저버리고 이집트의 풍습을 따르며 옥타비아누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기원전 31년, 로마의 패권을 결정지은 악티움 해전에서 그는 옥타비아누스의 함대에 완패했다.
패배 후 이집트로 도주한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로마 공화정의 완전한 종말과 제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안토니우스는 뛰어난 장군이었으나 정치가로서는 냉철함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학과 예술의 끊임없는 소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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