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전 두산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피크닉 전시관에서 열린 자신의 사진전 '휴먼 모먼트' 기자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1.15/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박용만 전 두산그룹 및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업인이 아닌, 사진작가로서 반세기 동안 렌즈에 담아온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다.
오는 16일 서울 중구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막을 올리는 그의 첫 개인 사전 '휴먼 모멘트'(HUMAN MOMENT)는 한 기업인이 평생을 바쳐 추구해온 시각적 고백이자,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착의 결과물이다.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다시 보고 싶어지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 믿는다"며 "사람이 직접 등장하는 장면은 물론 인간의 흔적이 머문 풍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용만이 사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열린 사진 콘테스트에 참여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카메라가 있는지 물었을 때, 아버지는 당신이 쓰시던 오래된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건네줬다. 당시 아버지는 "날씨가 좋으면 125분의 1에 조리개 11을 놓고 찍어라"라는 조언을 남겼다.
이 낡은 카메라를 들고 소풍을 갔던 그는 한 아이를 목격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유리병을 줍던 아이였다. 그는 홀린 듯 그 아이를 쫓아다녔고, 아이가 병을 들고 철도망 앞에 서 있는 장면을 셔터에 담았다. 이 사진은 교내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찍은 사진이 상을 받고 인정받는다는 세계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은 그를 평생 '렌즈 뒤의 관찰자'로 살게 한 결정적 동력이 됐다.
박용만 전 두산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피크닉 전시관에서 열린 자신의 사진전 '휴먼 모먼트' 기자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1.15/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이후 대학과 일본 유학 시절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바쁜 기업 경영 활동 중에도 해외 출장지에서 혼자 남겨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번 전시는 1971년부터 기록된 방대한 필름 중 엄선된 80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 구성은 독특하다. 초입에는 사람의 뒷모습이나 멀리서 포착한 풍경 위주로 시작해,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피사체와 거리가 가까워지며 인간의 얼굴과 표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시장에는 작품에 대한 시기나 장소 설명이 일절 배제돼 있다. 이는 관람객이 정보에 오염되지 않은 눈으로 사진 그 자체를 마주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다. "장소를 알게 되면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저 시각적으로 보고 공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작품 곳곳에는 그가 좋아하는 요소인 '빨간색' 모티브와 '프레임 안의 프레임' 구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1980년대 초반 재개발 전의 서울 종로, 천안문 사태 이전 중국의 풍경, 노르웨이의 피오르, 뉴욕과 파리의 거리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기록한 사진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다움'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된다. 특히 물의 반사를 억제해 물고기와 새가 한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사진이나, 평화롭게 책을 읽는 런던 시민의 모습 등은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박용만 전 두산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피크닉 전시관에서 열린 자신의 사진전 '휴먼 모먼트' 기자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1.15/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그는 "사진가라는 삶과 기업인이라는 삶이 공존하기가 참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1990년께 경영 현장에서의 압박감에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 사진만 하며 살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 끝에 꿈을 잠시 접어두었다.
전시 막바지에 배치된 흑백 사진들은 사회적 약자나 양극화의 문제를 다룬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낙산 언덕의 적산가옥이나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이다. 그는 "따뜻한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길 원했다"고 덧붙였다.
전시와 함께 출간된 사진집에는 전시작을 포함해 200여 점의 사진이 실렸다. 박용만은 "전시를 준비하며 내 사진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냉정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며 이번 전시가 자신의 삶을 중간 점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음을 시사했다.
전시는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2월 15일까지 이어지며, 관람은 무료다. 기업의 수장이 아닌 인간의 찰나를 기록해 온 한 노련한 관찰자의 진심 어린 시선을 마주할 기회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