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s of Choi Byung-so’s solo exhibition at Perrotin Seoul. Photo: Hwang Jung Wook.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서울 제공)
갤러리 페로탕 서울은 올해 첫 전시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고(故) 최병소 작가의 개인전 '언타이틀드'(Untitled, 무제)를 개최한다.
3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9월 작가가 타계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고적 성격의 개인전이다. 그의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의 작업 세계를 집중 조망한다.
최병소는 신문지나 잡지 위에 인쇄된 텍스트와 이미지를 볼펜과 연필로 반복해서 지워 나가는 '수행적 행위'로 독자적인 예술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정보의 상징인 신문을 까맣게 덮어버림으로써 언어가 가진 기존의 의미를 해체하고, 종이를 시간과 노동이 축적된 순수한 물질로 환원시킨다. 이 과정에서 종이는 찢기고 구멍 나며 새로운 시각적 밀도를 지닌 물리적 존재로 변모한다.
Choi Byung-so, Untitled 0230305, 2023, Ballpoint pen and pencil on newspaper, 54.5 × 80 × 1 cm, Framed: 71 × 96 × 4.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서울 제공)
작가는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인간을 본질적인 사유로부터 분리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타임'(TIME)이나 '라이프'(LIFE) 같은 잡지 제호만을 남긴 채 나머지를 무수히 많은 선으로 가로질러 그으며, 언어의 홍수 속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삶의 실제적 시간과 자아의 회복을 제안한다. 이는 가짜가 판치는 '페이크'의 시대에 무절제한 정보 권력에 저항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드로잉이자 조각이며, 동시에 거대한 설치 미술의 성격을 띤다. 볼펜 끝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고랑과 상처의 집합은 역설적으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관람객은 문법과 어휘의 즉각성을 잊게 만드는 어둠의 깊이 속에서, 사회적 조건성을 벗어난 '또 다른 시간의 침묵'을 경험하게 된다.
담배 한 갑, 신문 한 장이라는 작은 소우주에서 출발해 대우주(코스모스)로 확장되는 최병소의 작업은 정보에 잠식된 동시대인들에게 감각의 간결하고도 깊숙한 경험을 선사한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