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한국 공연계에서 고선웅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처럼 통용된다. ‘고선웅 연출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관객은 이미 어느 수준의 정서를 기대한다. 무거운 현실의 장면이 비수를 꽂다가도, 그 속에 기묘한 유머가 스며들어 어느새 울다가 웃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선웅의 연출 방식은 단순히 감정의 널뛰기가 아니다. 작품 전반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이란 주제의식이 짙게 깔려있다.
백로라 연극평론가는 “무대가 고달프게 살아온 우리의 삶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려는 마음이 느껴질 때 따뜻함과 감동이 밀려온다”며 “고선웅은 ‘연극이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는 걸 가장 잘 실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라고 평했다.
고선웅 연출가(사진=방인권 기자).
고선웅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무대와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4년간 몸담았던 광고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극작에 몰두했다. 1999년 신춘문예에서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당선된 그는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하며 점차 창작과 연출의 폭을 넓혀갔다.
제목부터 고선웅식 장난기가 느껴지는 ‘칼로막베스’(2010)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전환점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무협 액션극으로, 파워풀한 액션과 재치 있는 언어유희를 동시에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고선웅의 연출 세계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작품은 ‘푸르른 날에’(2011)다. 30여 년 전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5월 광주’를 소재로 삼은 창작극이다.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연출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를 휩쓸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제 ‘푸르른 날에’는 5월이면 생각나는 공연으로 회자된다. 고선웅은 역사적 아픔을 무겁게만 재현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말투와 표정에서 피어나는 웃음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연극 ‘푸르른 날에’(사진=신시컴퍼니).
무엇보다 고선웅 이름 석자가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작품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다. 2015년 초연 이후 누적 관객 3만 6000명을 기록했고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비극적 서사에 예상치 못한 웃음을 끼워 넣어 고선웅표 연출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이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사진=국립극장).
고선웅의 연출 세계는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뮤지컬 ‘광주’(2020)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치유와 희망의 서사로 풀어내며, 역사적 무게감에 대중성까지 확보했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최근 선보인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2025)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북장단과 소리꾼의 성음만으로 한(恨)의 정서를 그려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으로 창극의 새 지평을 연 고선웅 연출과 한승석 음악감독의 재회작으로, 고선웅 연출 세계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굳혔다.
고선웅은 연극 뿐 아니라, 뮤지컬·창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공연계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로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연출가로서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랜 시간 그와 작업한 배우들도 하나같이 ‘인간다움’을 고선웅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는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하성광은 “고선웅은 무엇보다 배우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연출가”라며 “춤을 전공했다면 춤을 추게 하고, 검도가 특기라면 손에 검을 쥐어준다”고 말했다. 이어 “개구쟁이 형 같은 느낌의 인간적인 연출가”라고 덧붙였다. 백 평론가는 “고선웅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면서도 연극의 본질을 결코 놓치지않는 연출가”라고 말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사진=국립극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