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이 계절에 고행 같은 산길을 헤치고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무가 비로소 제 안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때이기 때문. 봄의 연둣빛 설렘도, 여름의 무성한 초록도, 가을의 화려한 단풍도 모두 걷어낸 겨울 숲은 더 이상 자신을 꾸미려 애쓰지 않는다.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모두 내려놓은 자작나무와 강인하게 뻗은 줄기와 세월을 새긴 섬세한 결,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적막만이 남는다. 여기서 우리는 무언가를 채우려 발버둥 치는 삶 대신 다 비워냈기에 비로소 빛나는 ‘비움의 미학’을 목도한다.
자작나무 숲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군락. 빼곡한 흰 기둥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인제 겨울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자작나무로 엮은 작은 구조물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 숲에서는 인공물조차 나무의 일부처럼 보인다.
자작나무 사이로 난 탐방로 위에서 여행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나무 사이의 간격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자작나무’는 이름부터가 서정적인 울림을 준다. 불에 탈 때 수피 속의 기름 성분이 터지며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하지만 그 쓰임은 소리보다 더 밝은 빛에 닿아 있다.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나무 껍질은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타서 촛불이 귀하던 시절 혼례를 밝히는 화촉(華燭)의 주재료로 쓰였다.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며 어둠을 밝히던 그 환한 빛이 바로 이 나무의 살가죽에서 나온 셈이다. 결혼을 뜻하는 ‘화혼’(華婚)이라는 말에 ‘빛날 화(華)’ 자를 쓰는 이유도, 축의금 봉투에 적는 고풍스러운 문구들도 모두 이 하얀 나무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얀 자작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경사면 사이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길을 오른다. 겨울의 자작나무 숲은 풍경보다 질서에 가깝다.
그 역사는 문명의 기록으로까지 깊게 뻗어 있다. 천마총의 말안장을 장식한 ‘천마도’는 천 년 전 누군가가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린 꿈이었고,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일부 판목 역시 자작나무 목재의 힘을 빌려 세월을 견뎌냈다. 썩지 않고 무늬를 간직하는 그 강단 있는 성질은 예부터 영험한 것으로 대접받았다.
인제의 상징이 된 이 숲은 사실 1990년대 초 헐벗은 민둥산에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벌목용으로 심은 ‘생존의 기록’이다. 관광지로 치밀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모진 바람을 견디며 주민들 손으로 하나씩 심어진 나무들이 세월을 견디며 스스로 숲이 된 것이다. 이 숲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12년 이후지만 나무가 뿌리를 내린 시간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래서 겨울의 자작나무 숲을 걷다 보면 ‘조성됐다’는 건조한 말보다 ‘버텨왔다’는 묵직한 표현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몸의 속도를 늦춰야만 만나는 순백의 도량
안내소에서 임도를 따라 3.2㎞를 족히 걸어야 비로소 군락지에 닿는다. 겨울 길은 심리적으로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 얼어붙은 구간과 눈이 쌓인 구간이 반복되는 미끄러운 길 위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빠르게 앞서가기 보다 발밑을 살피고, 거친 숨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수를 자연스레 줄인다. 숲은 그렇게 방문객의 몸을 먼저 낮추고 정숙하게 만든다. 속도에 저당 잡혔던 일상의 소란이 산허리를 돌 때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대신 주변의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눈을 밟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 마른 나뭇가지가 바람에 서로 부딪히며 내는 사각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의 기척까지 귀에 들어온다.
얼마쯤 걸었을까. 숨이 차분해질 즈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북유럽의 어느 고원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이고도 압도적인 풍광이다. 원대봉 능선을 따라 늘어선 4만여 그루의 나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 서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하얀 수피와 대조되는 검은 마디들의 정교한 선(線). 이 계절의 숲은 일순간의 탄성보다는 깊은 응시를 요구한다. 화려한 색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순백의 고요는 사람의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아둔다.
자작나무 숲은 섣부른 말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부질없는 번뇌와 욕심들이 하얀 눈 위로 흩어지게 함으로써, 위로조차 필요 없는 평온한 상태로 우리를 이끈다. ‘나무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결코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련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그 단정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설악산 계곡을 건너 백담사로 이어지는 돌다리. 겨울 햇살 아래, 사찰로 들어서는 길이 차분하게 열려 있다.
‘백담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 수백 개의 담(潭)을 품은 계곡 끝에서 사찰의 시간이 시작된다.
자작나무 숲에서 몸의 속도를 강제로 늦춘 후 설악산 깊은 계곡 안쪽에 몸을 숨긴 ‘백담사’(百潭寺)로 향한다. 마음의 마지막 짐을 내려놓을 종착지인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굽이진 계곡길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정화의 과정이다. 창밖으로 보여주는 깎아지른 절벽과 얼어붙은 계곡물은 일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경계선이다. 겨울철엔 일반 차량 통행을 제한해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걷기를 선택한다면 그 깊이는 더해진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평탄한 길이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울리는 물소리는 오히려 온기를 품고 있다. ‘백 개의 연못을 지나야 비로소 닿을 수 있다’는 그 이름의 유래처럼, 백담사는 찾아오는 이에게 물리적인 거리만큼의 성찰과 인내를 요구한다. 절로 향하는 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마음의 층위는 한 단계씩 낮아진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풍경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백담사의 마당은 넓지만 결코 과시하거나 채우려 하지 않는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에는 그 여백이 주는 시린 아름다움이 마음을 씻어낸다.
이곳에서 시선을 붙잡는 것은 웅장한 전각의 위용이 아니라 계곡 가에 무수히 쌓여 있는 작은 돌탑들이다. 누군가는 간절한 기도를 얹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차마 버리지 못한 미련을 그 돌 틈에 끼워 넣었을 터다. 크지도 높지도 않은 그 돌탑들이 모여 이루는 풍경은 인간의 소망이 얼마나 작으면서도 끈질긴 것인지를 보여준다.
만해 한용운 선사 흉상. 백담사에 머물며 ‘님의 침묵’을 완성한 그의 시간이 이곳에 이어진다.
백담사 대웅전 앞 석탑. 눈 위에 놓인 돌의 결이 사찰의 오랜 시간을 말해준다.
백담사 계곡에 세워진 돌탑들. 누군가의 소망과 기도가 차곡차곡 쌓여 겨울 계곡을 가득 채웠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영시암’에서 시작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실과 중창을 거치며 지금의 자리에 남았다. 이곳은 단순히 유명한 절이 아니라 수행의 공간으로서 그 성격이 뚜렷하다. 교세를 확장하거나 외형을 키우기보다 산의 품속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머무는’ 절이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님의 침묵’을 집필하며 민족의 아픔을 법열로 승화시켰던 곳이기에 이곳의 고요는 더 깊고 단단하다.
절 안쪽으로 들어서면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백담사는 설악산 대청봉으로 향하는 산행의 시작점이자 긴 산행을 마친 이들이 마지막으로 발을 딛는 통과 지점이기도 하다. 산으로 오르는 이의 눈빛에는 비장함이, 산에서 내려온 이의 표정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평온함이 서려 있다. 절은 그들을 붙잡지도, 배웅하지도 않는다. 그저 ‘늘 그래왔다’는 듯 자리를 지킬 뿐이다. 백담사가 주는 힘은 정답을 가르쳐주는 친절함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만드는 ‘적당한 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