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피리' 발견…목간도 무더기 출토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2월 05일, 오전 10:21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횡적(가로 피리)이 출토됐다. 백제 횡적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한 사례이자, 삼국시대(7세기)를 통틀어서도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건 처음이다. 목간(글을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에 적은 것) 다수가 발굴돼 백제의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백제 횡적(가로 피리) 발굴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백제 ‘횡적’,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 첫 발굴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연구소에서 부여군과 함께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공개하는 조사 성과 공개회를 개최한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대지에 위치하며 사비기 왕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난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관북리 일대는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시설,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돼 사비 왕궁지로 인식되는 곳이다.

16차 발굴조사에서는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가로 피리) 1점과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한 총 329점의 목간이 출토됐다.

횡적은 백제 조당(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의하고 조회와 의례를 행하는 정치적, 상징적 공간)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에서 발견됐다.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됐다. 출토된 곳은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나무 소재로 4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었고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횡적은 엑스레이 분석 결과 한쪽 끝이 막힌 구조라는 것이 판명돼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세로 관악기가 아닌, 가로 피리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와 비교 연구한 결과 오늘날의 소금과 유사한 악기인 것으로 확인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횡적은 백제 궁중음악과 악기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백제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목간 329점 발굴…부여 행정 체계 파악돼

이번에 발굴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329점)이다. 백제 사비기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평가된다.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 출토됐으며, 간지년이 기록된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가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며 이는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의 시기다.

이외 국가 행정 문서인 인사 기록 목간, 국가재정과 관련된 장부 목간, 관등·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이 다수 출토돼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部司)와 관련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비도성의 중앙 행정 구역인 5부(部)와 방(方)·군(郡)·성(城)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목간도 다수 출토됐다.

도성 행정 단위인 ‘상·전·중·하·후부(上·前·中·下·後部)’ 5부를 기록한 목간, 지방 행정 단위인 ‘웅진·하서군’, ‘나라·요비성’ 등 새로운 지명이 확인되기도 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백제 사비기의 역사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겠다”며 “축적된 성과를 국민과 관련 학계에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가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 관리 목간(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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