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이네 (출처: Moritz Daniel Oppenheim, 183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56년 2월 19일, 독일 문학사의 거대한 이단아이자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프랑스 파리에서 긴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척수결핵으로 추정되는 병마로 인한 8년간의 고통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죽음으로 낭만주의의 황혼과 사실주의의 서막을 잇던 가교는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
하이네는 1827년 출간된 '노래의 책'을 통해 전 유럽의 심장을 울렸다. 슈만과 슈베르트 등 당대 음악가들이 그의 시에 선율을 입힌 곡만 수천 개에 달했다. 특히 '로렐라이'는 독일 민요처럼 굳어질 만큼 독보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달빛'과 '장미'를 사용해 낭만적인 감성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상주의의 허구를 비웃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1831년 프랑스 7월 혁명에 매료되어 파리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사회 비판적 전사로 변모했다. 장편 서사시 '독일, 겨울 동화'는 당시 독일의 검열 제도와 보수적인 민족주의를 향한 날 선 풍자의 정점이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교류하며 계급 문제와 사회 정의를 고민했고,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우게 된다"는 예언적인 통찰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일생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독일적 감성과 프랑스적 자유주의 사이의 끝없는 갈등이었다. 하이네는 시대를 앞서간 코즈모폴리턴이었으며, 언어를 다루는 데 있어 누구보다 정직하고 잔인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도 "신은 나를 용서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니까"라는 냉소 섞인 유언을 남겼다.
하이네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도 가장 날카로운 칼을 품었던 천재로 평가된다. 위선에 맞서 싸운 그의 정신은 여전히 현대 문학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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