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넘어 "나 다운 삶" 묻는 연극 '사의 찬미'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2월 20일, 오전 10:58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한 창작 작품은 호기심을 끈다. 특히 미스터리한 최후를 맞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연극 '사의 찬미'의 한 장면. (사진=쇼앤텔플레이, 위즈덤엔터테인먼트)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사의 찬미’도 그런 작품이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김우진의 비극적 로맨스를 그린다.

두 사람은 1926년 8월 같은 배에서 최후를 맞았다. 두 사람이 실제 연인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김우진이 유부남이라는 점 등 때문에 삶을 비관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에 윤심덕의 대표곡 ‘사의 찬미’가 죽음의 노래라는 상징을 담아 소문을 더욱 부추겼다.

연극은 두 사람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시대의 억압에 고뇌하는 예술가로서 면모를 비추는데 초점을 뒀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호흡으로 전개된다. 배우들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설득력을 쌓아올려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도록 만든다.

연극 '사의 찬미' 공연 장면 (사진=쇼앤텔플레이, 위즈덤엔터테인먼트)
이번 작품은 배우 서예지의 복귀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서예지는 4년 만의 복귀작으로 이번 연극을 택했다. 첫 연극임에도 세심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

서예지는 윤심덕 역을 맡아 사랑을 고백하는 당찬 여학생의 모습부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좌절하는 예술가까지 표현해낸다. 특히 여성 예술가에 대한 악의적 보도에 괴로워하며 감정을 한껏 내보이는 장면에선 무대 공연에 녹아든 모습이 엿보인다.

‘사의 찬미’의 또 다른 볼거리는 윤심덕과 함께 한국 첫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작품 속에선 나혜석이 불륜을 들켜 프랑스 센강에 뛰어드려는 순간 윤심덕이 그녀를 구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함께 그려진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두 명의 여성 예술가가 짧은 순간이지만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제한된 환경에서 참된 자신을 찾아 헤매며 시대에 도전한 두 여성이 서로를 만나 위로를 나누는 모습은 로맨스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연극에서 관객이 극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만드는 요소로 무대 연출과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무대는 영상을 활용해 조선과 일본, 프랑스를 오가며 시공간을 유연하게 전환한다. 두 사람이 결말을 맞는 바다 위 장면도 잔잔한 파도로 구현돼 비극을 아름답게 구현한다. 피아니스트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선율은 인물의 감정을 거센 파도처럼 격화시키거나, 잔잔한 물결처럼 섬세하게 와닿게 한다.

“참(진실하고 올바른 것)을 위해 살리라”는 대사는 ‘나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벗어날 수 없는 시대와 환경에서 어떠한 선택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실제 사실이 아닐지라도, 연극 속에서 이들이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보여주는 신념과 고민은 현재도 유효하다.

‘사의 찬미’는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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