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야스퍼스 (출처: Unknown (Mondadori Publishers), 194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83년 2월 23일, 독일 올덴부르크에서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거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태어났다. 그는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구하며, 과학과 이성이 설명할 수 없는 '실존'의 영역을 철학적 사유의 중심에 세웠다.
정신과 의사였던 야스퍼스는 1913년 출간한 '정신병리학 총론'에서 심리적 현상을 단순히 생물학적 기제로 보지 않고, 환자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려는 현상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현대 정신의학의 기초를 닦았다. 이러한 의학적 기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객관적 지표로 환원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그를 본격적인 철학의 길로 인도했다.
야스퍼스 철학의 정수는 '한계 상황' 개념에 있다. 그는 인간이 죽음, 고통, 투쟁, 죄책감과 같이 피할 수 없고 극복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나약함과 마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이 이 절망적인 한계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 즉 '실존'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존재의 전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포괄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주관과 객관을 모두 아우르는 근원적인 토대를 의미하며, 인간이 유한성을 깨닫고 초월자를 향해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나치 정권 아래에서 유대인 아내를 지키며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던 그는 전후 독일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1946년 발표한 '죄의 문제'를 통해 나치 치하 독일인의 도덕적, 형이상학적 책임을 준엄하게 비판하며 진정한 과거 청산과 정신적 재생을 촉구했다.
야스퍼스는 현대인이 과학 기술과 기계적 조직 속에서 부품화되는 '대중 사회'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는 인간 사이의 진정한 '실존적 의사소통'만이 인간 소외를 극복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지표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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