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문학의 거성,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27일, 오전 06:00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출처: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 186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07년 2월 27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미국 문학사상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시인 중 한 명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가 탄생했다.

롱펠로는 보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언어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에 두루 능통했다. 귀국 후엔 보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현대 언어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러한 학문적 토대는 그가 단테의 '신곡'을 미국 최초로 완역하는 밑거름이 됐다. 또한 유럽의 전설과 운율을 미국 시에 이식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롱펠로의 진정한 업적은 미국 고유의 신화와 역사를 품격 있는 서사시로 승화시킨 데 있다. 그의 대표작들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에반젤린'(1847)은 아카디아 추방 사건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미국 시에서 6각운(hexameter)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하이어와사의 노래'(1855)는 인디언 전설을 바탕으로 한 서사시로, 독특한 리듬감을 통해 미국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마일즈 스탠디시의 구혼'(1858)은 청교도 초기 정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당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또한 '인생 찬가', '마을의 대장간' 같은 서정시들은 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롱펠로는 생전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코너'에 흉상이 세워진 최초의 미국 시인이 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비록 후대에 이르러 그의 시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낙천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난해한 문학을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공로는 부정할 수 없다.

그는 19세기 미국 '화로가 시인들'의 대표 주자로, 유럽의 문학적 전통을 미국적 소재와 결합해 미국 문학의 지평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식민지 시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국 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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