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의 작가 황재형.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회고전 ‘회천’(서울관)을 열었을 당시 공개했던 작업실이다. 전시에 따로 걸린 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넓은 작업실, 하얀 갤러리도 아닌 탄광 속 화가라니. “캄캄한 어둠 속에선 서로의 랜턴 빛에 의지해야 그나마 내 밥이 보인다. 막장에 갇힌 시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때, 식사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다. 작가 황재형이 27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다.
황재형의 ‘식사’(1985). 광부들이 막장에 갇힌 시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때라는 점심시간, 식사 장면을 그렸다. 서로의 랜턴 빛에 의지해야 내 밥이 보인다고 했다. 작가는 화면 상단 오른쪽 끝에 앉은 광부가 자신이라고 일러줬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중앙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직후였다. 일용노동자로 광부의 길을 자처한 첫 3년은 태백·정선·삼척 등에서 붓·물감 대신 잡은 곡괭이·석탄과 사투를 이어간 시간이었다. 온통 검정뿐인 탄광촌, 말라비틀어진 폐광촌을 문신 새기듯 온몸에 기록한 이후에야 그 짙은 흔적을 화폭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 세월을 두곤 작가는 “탄광 막장에서 순수함과 진정성을 건져내려 노력한 시간”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황재형의 ‘식사’(1985) 중 부분. 오른쪽에 보이는 얼굴이 갱도 안에 있던 작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홀몸도 아니었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까지 대동했다. 하지만 육체에 덮인 광부로서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낀 채 갱에 들어갔던 게 실명위기를 불렀고, 결국 눈에 심각한 질환이 생겨 퇴출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신에 씌운 광부로서의 삶은 평생 이어졌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 열린 황재형의 회고전 ‘회천’ 전경. 나라와 자식에 자신을 내준 은퇴한 어느 광부를 그린 ‘아버지의 자리’(2011∼2013·왼쪽), 안쪽으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탄광촌의 시름을 드러낸 ‘고한’(2011·부분)과 그 틈에 끼어든 환락의 늪을 그린 ‘욕망’(2008)이 차례로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광부화가에게 리얼리즘은 ‘사람 사는 도리’였다. 시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술은 그저 자기과시일 뿐이라고 여겼다. “아무리 광부가 되겠다고 했어도 내가 화가인데 진짜 광부야 됐겠어? 난 그저 그들과 막장에 머물렀을 뿐이야.”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 열린 황재형의 회고전 ‘회천’ 전경. 작가의 ‘아버지의 자리’(2011∼2013)에 모델로 나섰던 광부를 머리카락으로 다시 풀어낸 작품 ‘드러낸 얼굴’(2017·왼쪽) 옆으로 역시 머리카락으로 제작한 ‘별바라기’(2016)가 걸렸다. 광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에 차렸다. 발인은 3월 1일 오전 7시 4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