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영토권 주장은 '어불성설'임이 일본 측 기록을 통해 또 한 번 확인됐다.
26일 열린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역사적 문헌으로 본 독도'에서 김영수 독도연구소장은 1877년 '태정관지령 제223호'의 첨부 지도인 '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지도에서 울릉도 바로 옆 동북쪽에 위치한 작은 섬은 '독도'가 아닌 '간도'(일본 측 명칭은 마노시마/マノ島=間島)로 명확히 표기돼 있었다. 이는 일본 측이 그간 독도라고 강변해 온 섬의 실체가 실제로는 한국 영토인 울릉도 부속 도서인 간도임을 일본 자국의 지도도 증명한 것이다.
김 소장은 이날 진행된 학술회의 마지막 세션에서 1877년 '태정관지령 제223호'의 성립 과정과 관련 인물들을 추적, 당시 일본 정부가 스스로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공식 인정한 역사적 배경과 실무자들의 판단을 상세히 파헤쳤다.
김 소장에 따르면, 1877년 전후 시마네현의 현령이었던 사토 노부히로(1816-1900,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가 쪽 5대 조부) 참사 사카이 지로(1836-1900)는 팽창주의에 입각해 울릉도와 독도를 편입하려 했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의 핵심 실권자였던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1825-1884)가 결단을 통해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1877년 3월 29일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내무성 보고에 기초해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공식 판단했다. 이날 최종 승인된 '태정관지령 제223호' 문서에는 우대신 이와쿠라 도오미, 참의 대장경 오쿠마 시게노부, 참의 외무성 데라시마 무네노리, 참의 사법경 오키 다카도토, 태정관 본국 대석관장 겸 내무대보 히지카타 히사모토, 대서기관 이와야야 이치로쿠 순으로 도장이 찍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일본 정부와 시마네현은 '울릉도'(기죽도)와 '독도'(송도)가 나와 있는 '기죽도약도'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울릉도 옆의 섬(간도)을 한국 영토인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간도가 한국령인 독도이고, 지금의 독도(일본이 일방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다케시마)는 다른 섬이며 자신들의 영토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 하지만 김 소장은 일본 지도인 '기죽도약도'에까지 울릉도 옆 섬은 독도가 아닌 간도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일본은 자기네에 불리한 '태정관지령 제223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간도'가 한국의 원래 '독도'라고 우겨 왔다"며 "최근 연구 도중 '기죽도약도' 상에서 너무 작아 모르고 지나쳤던 '간도'의 명칭이 '마노시마'로 표기된 것을 처음으로 규명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마노시마' 표기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던 논리는 무용지물이 됐다"며 "우리 영토 주권에 대한 대내외적 확신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6일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역사적 문헌으로 본 독도'가 개최됐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한편, 이날 학술회의에서 첫 세션에서는 일본 정부의 체계적인 왜곡을 집중 분석했다. 석주희 연구위원은 일본 영토주권전시관의 홍보 논리를 비판했다. 서진웅 연구위원은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677)에서 독도가 일본 통치 영역에서 제외된 명백한 사실을 재확인하고, 국제 사회를 겨냥한 일본 외무성 영문 자료의 의도적 편집 오류를 지적했다. 박지영 교수는 시마네현의 '제5기 죽도보고서' 속 자의적 사료 해석을 학술적 근거로 반박했다.
두 번째 세션은 역사적 사실 규명에 초점을 맞췄다. 김나영 연구위원은 일본 내 연구 동향을 분석해 그들의 주장이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임을 밝혔다. 장정수 연구위원은 조선 후기 울릉도 수토제를 청나라 접경지인 신도 사례와 비교하며 조선 정부의 능동적인 영토 수호 의지를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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