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장벽 허문 대구의 함성…2·28 학생의거 발발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2월 28일, 오전 09:30

대구에서 울려퍼진 2·28 민주운동. 2018.1.30/뉴스1

1960년 2월 28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대한 물결이 대구에서 시작됐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독재가 극에 달하던 시기,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불의에 항거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대구 학생의거'다.

사건의 발단은 자유당 정권의 치졸한 정치적 계산이었다. 당시 대구에서는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 박사의 선거 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학생들의 야당 지지세가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정권은 대구 시내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임시 등교령'이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렸다. 학생들의 정치적 관심을 차단하려는 강제 구금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정권의 비열한 수단에 굴복하지 않았다.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고 등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은 학교별로 격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섰다.

학생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과 구타에도 불구하고 "학원의 자유를 달라", "독재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매를 맞는 학생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박수를 치거나 함께 구호를 외치며 지지를 보냈다.

2·28 의거는 학생들의 일회성 시위로 끝나지 않았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인이 독재 정권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 불씨는 이후 대전의 3·8 의거, 마산의 3·15 의거를 거쳐 마침내 4·19 혁명이라는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오늘날 2·28 의거는 대구의 자부심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 평가받는다. 1960년 그날, 교복을 입고 독재에 맞섰던 어린 학생들의 용기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기초가 됐다.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우리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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