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쿄 시가지. (출처: 日本写真公社・深尾晃三 English: Fukao Kōzō, 194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45년 3월 10일 밤, 일본 도쿄 상공에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국 육군 항공대(USAAF) 소속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 300여 대가 저고도로 침투하며 수천 톤의 네이팜 탄(M69 소이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도쿄 대공습(작전명 미팅하우스)의 시작이었다. 이는 일본 수뇌부에게 전쟁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경고였다.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의 판도를 바꾼 동시에 인류사상 가장 참혹한 공습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전까지 미국은 군수 공장을 겨냥한 주간 정밀 폭격을 고집했으나, 제트기류와 기상 악화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목조 건물이 밀집한 일본 도시의 특성을 이용해 야간에 저고도에서 소이탄을 투하,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초토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공습의 주 타깃은 인구 밀도가 높았던 도쿄 동쪽의 시타마치 지역이었다. 투하된 소이탄은 건물에 닿는 즉시 끈적이는 젤 형태의 연료를 뿜어내며 꺼지지 않는 불꽃을 일으켰다. 시속 40km에 달하는 강풍은 불길을 거대한 화염 폭풍으로 키웠고, 산소를 집어삼키며 대기를 섭씨 1000도 이상으로 가열했다.
강으로 뛰어든 시민들은 끓어오르는 물에 목숨을 잃었고, 지하실로 숨어든 이들은 질식사했다. 단 하룻밤 사이에 약 10만 명이 사망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도쿄 시가지의 약 1/4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도쿄 대공습은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마비시켰으나, 민간인 학살이라는 도덕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작전을 주도한 르메이조차 "전쟁에서 지면 우리는 전범으로 기소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또한, 이는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이어지는 서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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