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렛 걸’ 쿠말라 “역경 헤쳐 나간 강인한 여성, 현대인에 영감 되길”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3월 14일, 오후 02:43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한 ‘정야’는 모든 시대에 필요한 여성상을 담아낸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현대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

장편소설 ‘시가렛 걸(Gadis Kretek)’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내한한 라티 쿠말라 작가(46)는 “과거 인도네시아처럼 여성이 소외돼 있던 시대에는 앞장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내 생각과 목소리를 인물 ‘정야’에 담았다”고 말했다.

‘시가렛 걸’은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원작 소설로, 영어·독일어·아랍어 등 6개 언어로 번역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동남아시아문학총서’ 일곱 번째 작품으로 선정돼 한국 독자와 만나게 됐다.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한-아세안센터 라운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쿠말라는 “‘시가렛 걸’은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도네시아의 역사도 담고 있는 작품”이라며 “이 소설을 통해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가렛 걸’의 저자인 라티 쿠말라 작가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한-아세안센터 라운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한세예스24문화재단).
쿠말라는 인도네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역사와 사회 속에서 여성의 삶과 정체성을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TV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며 폭넓은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발표한 ‘시가렛 걸’은 그의 대표작이다.

작품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 크레텍(정향 담배) 산업을 배경으로 산업의 흥망성쇠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남성 중심의 산업 구조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 여성 ‘정야’를 중심으로 3대에 걸친 사랑과 가문의 비밀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인도네시아 담배 재벌 ‘크레텍 자가드 라야’ 가문의 후계자들이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죽기 전 아내가 아닌 ‘정야’라는 이름을 부르고, 아들들은 그가 평생 가슴에 묻어둔 비밀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최고의 크레텍을 만들어낸 여성 정야의 삶과 흔적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부터 독립 이후의 혼란기, 1965년 반공 대학살까지 이어지는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굴곡을 작품 속에 촘촘히 담아냈다. 특히 인도네시아 전통 담배 ‘크레텍’은 한때 국가 경제를 떠받친 산업으로, 수많은 가문과 노동자의 생계와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는 남성이 사회를 이끄는 주체였고 여성은 이를 지지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며 “여성이 담배를 만들면 ‘담배 맛을 망친다’며 여성을 탓하는 사회적 문화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과거 크레텍 산업에 종사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작품의 영감이 됐다”고 덧붙였다.

남편인 인도네시아 작가 에카 쿠르니아완의 장편소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Beauty Is a Wound·2017)와 ‘호랑이 남자(Man Tiger·2018)’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그는 “남편도 작가여서 집안 자체가 작가 집안”이라며 웃었다.

한국 독자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쿠말라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많은 한국 작품이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되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독자들은 역사적 사건의 맥락을 알고 있어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만, 해외 독자들도 이야기 자체의 힘만으로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가렛 걸’의 저자인 라티 쿠말라(왼쪽) 작가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한-아세안센터 라운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날 행사에 참석한 체쳅 헤라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시가렛 걸’ 한국어판 출간이 양국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고 문화적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 “개별 출판사들이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 지역 명작들을 발굴해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에는 말레이시아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수미 한세예스24 문화재단 이사장(왼쪽부터), 라티 쿠말라 작가, 체쳅 헤라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13일 열린 ‘시가렛 걸’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세예스24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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