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엑손 발데스 호 기름 누출 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3월 24일, 오전 05:05

엑손 발데스 호 기름 누출 사고 직후의 모습. (출처: USEPA Environmental-Protection-Agency,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89년 3월 24일 새벽, 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해협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환경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될 사고가 발생했다. 거대 유조선 엑손 발데스(Exxon Valdez) 호가 암초에 부딪쳐 선체가 파손됐고, 그 틈으로 약 1100만 갤런(약 4100만 리터)에 달하는 원유가 쏟아져 나왔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항로 이탈이었다. 당시 선장이었던 조셉 헤이즐우드는 음주 상태로 조타실을 비웠으며, 무자격자인 3항사가 배를 몰다 블라이 암초를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엑손 측의 대응은 무능함 그 자체였다. 오일 펜스 설치는 늦어졌고, 방제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친 사이, 기름띠는 알래스카의 청정 해안선 2100km를 따라 빠르게 확산했다.

피해는 가혹했다. 해조류부터 대형 포유류까지 알래스카의 생태계는 순식간에 붕괴했다. 약 25만 마리의 바닷새, 2800마리의 해달, 300마리의 잔점박이물범, 그리고 22마리의 범고래가 기름에 젖어 죽어갔다. 수억 개의 연어와 청어 알이 오염돼 지역 어업은 전멸했다.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동원되어 뜨거운 물로 바위의 기름을 닦아냈지만, 이 과정에서 암석에 서식하던 미생물까지 사멸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 사고는 기업의 책임과 환경 보호에 대한 전 지구적 경종을 울렸다. 미 의회는 1990년 '유류오염방지법'(Oil Pollution Act)을 제정해 모든 유조선에 이중 선체 구조를 의무화했다. 엑손 사는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과 정화 비용을 지불했으나, 파괴된 공동체와 생태계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사고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알래스카의 일부 해안 지층 아래에는 여전히 분해되지 않은 원유가 남아 있다. 엑손 발데스 호 사건은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와 기업의 안일함이 자연에 얼마나 영구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훈이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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