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의 트라우마, 섬세하게 그려내"…한강, 美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종합)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3월 27일, 오전 10:52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또 한 번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거뒀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년 출간 도서 시상식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영어판 ‘We Do Not Part’를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가 맡았다.

NBCC는 “제주 4·3 사건의 여파가 남긴 트라우마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며 “상실 속에서 창조와 진실을 집요하게 탐구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긴 여운을 남긴다”고 덧붙였다.

앞서 2024년 시인 김혜순이 시집 ‘날개 환상통’(영어판 ‘Phantom Pain Wings’)으로 NBCC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 부문에서의 한국인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가 한강(사진=연합뉴스).
2021년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와 함께 한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장편소설로, 소설가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 집을 찾으면서 인선 어머니의 기억을 따라 과거사를 되짚는 이야기다. 죽음과 생존의 경계에 선 인물들이 기억과 애도를 통해 서로를 붙드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일찍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2023년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돼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올해 NBCC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는 앤절라 플러노이의 ‘The Wilderness’, 캐런 러셀의 ‘The Antidote’, 케이티 기타무라의 ‘Audition’ 등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자서전 부문에는 아룬다티 로이의 회고록 ‘Mother Mary Comes to Me’가 포함되는 등 총 6개 부문에서 수상작이 가려졌다.

NBCC는 미국 언론·출판계 도서 비평가들이 1974년 창설한 비영리 단체로, 소설·논픽션·전기·자서전·시·비평 등 6개 부문에서 영어로 출간된 최우수 도서를 선정한다. 상금 없이 문학적 성취만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힌다.

◇기억과 애도의 서사, 세계를 울리다

한강은 역사적 비극이 남긴 인간 내면의 상처를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온 작가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풍문여고와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부친은 소설가 한승원이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다. 이 작품으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소년이 온다’(2014)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며 작품 세계를 확장했고, 역사적 비극을 인간 보편의 문제로 풀어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최근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산문집 ‘빛과 실’이다. 이 책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비롯해 미발표 시와 산문, 정원 일기 등 총 12편의 글이 담겼다. 차기작인 ‘겨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언제 출간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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