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현희 연극평론가] 코로나19 대유행은 기억 뒤편 저 멀리 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은 전염병의 창궐로 문명의 시계가 멈춰버렸던 시간 이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욕망하고 소비하며 혹은 거꾸로 순서를 반복한다. 이런 일상이 지속하리란 견고한 믿음 위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사고는 이뤄지지 않는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서 만난 연극 ‘멸종위기종’(황정은 작/윤혜진 연출, 2월 6~1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이에 대한 반어적 비유로 읽힌다.
연극 ‘멸종위기종’의 한 장면.(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유경오 작가 제공)
‘멸종위기종’은 멸종위기에 이른 동물 사진으로 유명해진 중견의 사진작가와 그의 제자인 젊은 사진작가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제목이 무색하게 연극에서 멸종위기종은 부재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이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뿐이다. 작품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야망과 시기 및 질투, 괴로움을 다룬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전쟁하는 동안 동물들은 생사를 다투다가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거울을 들이대듯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작품의 톤은 무겁지 않다. 빠르고 긴박한 전개로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태세전환 하는지 보여준다. 사실적이면서, 약간 틀어진 동선으로 공간을 깊숙하게 사용하는 미장센은 미묘하게 뒤바뀌는 톤과 호흡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문틀을 사진이 전시되는 공간으로 사용한 점도 효율적이며 깔끔하다. 관객의 예상을 웃도는 장면 전개가 흥미를 유지하며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달린다.
연극 ‘멸종위기종’의 한 장면.(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작가)
‘멸종위기종’은 고뇌하며 고통 속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변화하는 인간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것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하며 존재적 위축감과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숙련된 예술가도, 젊은 예술가도 동물은 그들에게 소재이자 도구일 뿐 누구도 동물과 깊고 진정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들에게 열광하는 대중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흥밋거리를 따라 이슈를 소비할 뿐으로 유명한 동물에게는 관심을, 그렇지 않은 동물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이중성을 장착하고 있다. 동물원 사육사를 제외하고, 무대 위 누구도 동물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연극 ‘멸종위기종’의 한 장면.(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작가)
작품은 관심의 대상이 바뀔 뿐, 변화 혹은 성찰하지 않는 인간을 보여준다. 전통적 드라마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것은 획기적이다. 동시에 이것은 지독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기술발달로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일관된 자아에 대한 믿음 또한 환상에 불과할 뿐, 그 속에서 인간은 욕망에 흔들리며 부유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자연의 역할이 한결같았음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드라마지만, 이야기 밖에 있는 관객이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동물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너머의 동물의 고통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작품은 묻는다. 이를 인식할 때 비로소 당신은 새로운 관심 대상을 찾아 부유하는 대신에, 소외된 존재와 오랫동안 눈을 맞출 수 있으리라 작품이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