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관광객 3000만 달성보다 더 급한 것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01일, 오전 07:03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숫자는 화려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무겁다. 정부가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내세우는 사이 관광산업의 체력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지난 31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28원을 넘었고, 4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도 큰 폭으로 올랐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까지 겹치면서 유럽행 단체 수요 계약이 무산된 여행사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장의 시름을 덜어줄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치솟을 때 여행업계의 손실을 줄일 안전판부터 마련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해외여행을 여전히 ‘국부 유출’로만 치부하는 낡은 인식이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환율·고유가에 여행업계 ‘속앓이’

지금 아웃바운드 시장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이미 계약한 패키지 상품은 별도 특약이 없으면 환차손과 유류할증료 인상분을 여행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며, 이는 자연스레 신규 예약 감소와 취소 행렬로 이어진다. 남아 있던 마진마저 비용 상승에 잠식당하는 구조다. 겉으로는 상품이 팔리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수익성 제로’의 늪에 빠져 있다.

아웃바운드 여행업을 외화 유출의 통로로만 보는 시선도 이제는 교정해야 한다. 해외 결제 지출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에서 항공, 카드 결제, 공항 서비스, 면세, 보험, 플랫폼, 마케팅, 고용 등 막대한 산업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국인을 해외로 보내는 산업 역시 국내 소비와 일자리를 지탱하는 생태계의 엄연한 한 축이다. 여행을 단순 소비로만 간주하고 산업적 가치를 외면하는 편협한 시각으로는 제대로 된 위기 대응책이 나올 수 없다.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인바운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25년 외래객 1893만 명 기록은 외형상 양적 성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질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방한객 1인당 지출액은 2019년보다 줄었고, 외국인 면세점 매출도 크게 감소했다. 손님은 늘었지만 산업의 수익성은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한 셈이다. 서울 편중과 저단가 쇼핑 중심 구조가 여전함에도 정부는 오로지 ‘숫자의 마법’ 뒤에 숨어 외래객 수 회복에만 매달리고 있다.

◇헤외여행은 국부유출 낡은 인식 고쳐야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기획재정부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일도 기관 내부의 관리 책임을 넘어 정책 설계의 오류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부는 출국납부금을 인하하며 생색을 냈지만 감소한 기금을 보전할 대체 재원 마련은 뒷전이었다. 재정 기반을 흔들어 놓고 공공기관에 더 높은 성과만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재원은 줄이고 실적만 압박하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는 어떤 조직도 안정적인 정책 집행이 불가능하다.

이제 관광을 보는 국가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관광은 홍보 영상 몇 편으로 포장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항공, 공항, 숙박, 교통, 데이터, 플랫폼이 정교하게 얽힌 복합 산업이자 서비스 무역의 핵심 축이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선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버리고, 관광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대우해야 한다. 정부의 눈이 바뀌지 않으면 관광객 3000만 명이 와도 산업의 허리는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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