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C 엽기적 이단아, 자코모 카사노바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4월 02일, 오전 06:00

자코모 카사노바. (출처: Eugène Gaujean (1843-1903) after an unknown sculptorFrançais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단순한 바람둥이를 넘어, 지성과 예술, 그리고 탐닉으로 점철된 당대 최고의 '이단아' 자코모 카사노바였다.

카사노바는 본래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본능은 성경보다 여인의 향기에 민감했다. 10대에 도박과 연애 사건으로 신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군인, 바이올리니스트, 법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스캔들이 뒤따랐다.

카사노바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으며, 수학, 철학, 문학에 능통했다. 그는 여성을 대화와 공감을 나누는 인격체로 대우하며 그들의 갈망을 정확히 꿰뚫었다. 세련된 화술을 동원한 그의 유혹은 당대 귀족 부인부터 하녀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분탕질은 결국 공권력의 타깃이 됐다. 1755년, 마법과 신성모독, 풍기문란 혐의로 베네치아의 악명 높은 '피온비' 감옥에 투옥된다. 하지만 그는 탈옥에 성공하며 유럽 사교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한다. 이후 파리, 런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복권 사업을 주도하거나 스파이 활동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갔다.

화려한 시절도 잠시, 노년에 접어든 카사노바는 건강 악화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다. 보헤미아의 한 성에서 사서로 일하며 고독한 여생을 보낸 그는 자신의 방대한 연애사와 모험담을 담은 회고록 '내 삶의 역사'를 집필했다. 여기 포함된 화려한 여성 편력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훗날 수많은 이야기와 영화의 소재가 됐다.

그는 "나는 철학자로 살았고, 기독교도로서 죽는다"는 말과 함께 1798년 73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에 대해서는 18세기 유럽 문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기록한 증언자라는 재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의 윤리와 상식을 벗어난 행위는 아무리 좋게 포장되어도 비난을 면키 어렵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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