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출처: Unknown author, 13C,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141년 4월 7일, 윈체스터 공의회에서 헨리 1세의 딸인 마틸다(Matilda) 황후가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통치자인 '영국인의 여주인(Lady of the English)'으로 추대됐다.
이는 영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단순한 왕위 계승을 넘어, 남성 중심의 중세 봉건 질서 속에서 여성이 국가의 정점에 선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1135년 헨리 1세가 사망한 후, 영국은 마틸다와 그의 사촌 스티븐 사이의 치열한 왕위 계승 전쟁, 이른바 '무정부 시대'(The Anarchy)에 돌입했다. 헨리 1세는 생전에 귀족들에게 마틸다를 후계자로 인정할 것을 서약하게 했으나, 여성 통치에 반감을 가진 귀족들은 스티븐을 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1141년 2월, 링컨 전투에서 스티븐이 포로로 잡히며 전세는 역전되었고, 마틸다는 마침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됐다.
윈체스터에 모인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마틸다를 정식 통치자로 추대했다. 이는 법적, 종교적 정당성을 확보한 중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마틸다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대관식을 위해 런던으로 진입했으나, 오만한 태도와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 런던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대관식 직전 도시에서 쫓겨난 그는 정식 '여왕'(Queen)이라는 칭호를 얻는 데 실패한다.
마틸다는 비록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다시 내전에 휘말렸으나, 그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 1153년 체결된 월링퍼드 조약을 통해 그의 아들 헨리 2세가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으며 플랜태저넷 왕조가 개창됐다.
마틸다의 사례는 중세 유럽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얼마나 취약했는지, 동시에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꿨는지 보여 준다. 그는 왕관을 쓰지 못한 여왕이었으나, 이후 영국 역사에 등장할 강력한 여왕들의 선구적 이정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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