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러시아가 승리한다면'은 독일의 안보 전문가가 철저한 군사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그려낸 미래 보고서다. "에스토니아의 작은 도시 하나 때문에 핵전쟁을 감수하겠느냐"는 출발점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겠느냐"는 오래된 안보 질문과 포개진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할까"라는 질문은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되었을 때 미국이 자국 본토(샌프란시스코)의 안전을 담보로 한국(서울)을 방어해 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서울-샌프란시스코 딜레마'(Seoul-San Francisco Dilemma)’를 뜻한다.
이같은 맥락이 유럽에 적용된다. 책은 2028년 에스토니아 국경 도시 나르바에 러시아 깃발이 꽂히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토와 세계 질서가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지 서늘하게 추적한다.
시점은 2028년 3월이다. 에스토니아 국경 도시 나르바가 공격받고, 나토조약 제5조가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동맹 전체를 흔든다. 책은 이 장면을 소설이 아니라 군사 시뮬레이션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로 밀어붙인다.
러시아의 움직임은 정면 충돌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난민의 무기화와 주요 인사 암살, 사이버 테러, 딥페이크를 활용한 여론전까지 하이브리드 전쟁의 층위가 겹친다. 전장은 국경선 밖으로 번지고, 동맹의 의사결정은 그 틈에서 마비된다.
저자가 겨누는 진짜 대상은 러시아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유럽의 분열, 확전 공포에 사로잡힌 지도부, 흔들리는 집단방위 체제가 더 큰 위협으로 떠오른다. 작은 도시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핵전쟁까지 감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토의 심장부를 찌른다.
이런 가정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에스토니아의 작은 도시 하나 때문에 핵전쟁을 감수하겠느냐"는 물음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겠느냐"는 오래된 안보 질문과 포개진다. 유럽의 위기를 빌려 동맹과 억지, 핵 공포의 구조를 다시 보게 만든다.
카를로 마살라는 시나리오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위험과 결정, 그 결과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예언을 내세우기보다 최악의 상황을 미리 그려보는 예행연습 쪽에 가깝다.
중반 이후에는 미국 패권 약화와 중국의 부상, 남중국해 긴장,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같은 도미노가 함께 놓인다. 유럽에서 열린 균열이 아시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평화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책은 전쟁 이후가 아니라 전쟁 전 시대를 사는 독자에게 던지는 차가운 경고장처럼 읽힌다.
△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카를로 마살라 지음/ 이지윤 옮김/ 시프/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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