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훌리건과 벌컨'
장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가 합리적이고 온건한 시민들이 왜 정치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민주주의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뼈아픈 진단을 내놓았다.
신간 '훌리건과 벌컨'은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에 쌓인 극단주의와 타협의 실종을 정면으로 다룬다. 장 교수는 오늘의 정치를 '부족전쟁'이라는 말로 압축한다.
저자는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섬멸해야 할 적으로 보는 언어가 공론장을 잠식했다고 본다. 그 결과 합리적 시민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정당은 강성 팬덤과 포퓰리즘에 납치됐다고 진단한다.
'훌리건'과 '벌컨'이 책의 핵심개념이다. 저자는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비유를 빌려 폭력적 당파성에 빠진 시민을 '훌리건',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시민을 '벌컨'으로 구분한다.
문제는 현실 정치가 벌컨의 목소리를 지우고 훌리건의 함성만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저자는 해법도 과거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찾는다. 1987년 6월 군부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파국 대신 6·29 선언을 중심으로 타협을 택했던 순간을 다시 불러낸다. 저자는 "그해 민주주의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인 타협과 협상이라는 열쇠를 통해서였다"고 썼다.
저자는 진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정당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정당법 제17조와 제18조 철폐, 비례대표 후보 추첨제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시민의 통제권을 넓히기 위한 국회의원 소환제와 지역구 의원 3선 연임 제한도 함께 거론한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도 큰 축이다. 저자는 대통령 권력의 덩치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기 국정과제를 혼자 밀어붙일 수 없도록 권력 작동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 전환과 연금, 의료 개혁 같은 과제를 헌법상 '협치 영역'으로 두고 국회 가중다수결과 시민 공론화를 거쳐 추진하자는 제안도 내놓는다.
3장과 4장으로 가면 논의는 더 넓어진다. 트럼프 복귀가 비춘 보수와 진보의 빈곤, 신냉전과 경제 안보, 데이터 통치, 인플레와 리더십의 문제까지 한국 정치의 외교·경제·기술 환경을 함께 짚는다. AI 정치인을 상상하는 대목도 그 연장선에 놓인다.
저자 장훈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2024년까지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활동했고, 한국정당학회장과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중앙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 '훌리건과 벌컨'/ 장훈 지음/ 어포인트/ 1만9800원
art@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