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출처: 동아일보, 1976,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화가 이중섭이 태어났다.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비극적 수난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짧고도 강렬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이중섭은 정주 오산학교에서 서구 근대 미술의 기초를 배웠다. 이후 일본 분카학원(文化學院)으로 유학을 떠나 자유롭고 실험적인 화풍을 익혔다. 그의 초기 활동은 자유미술가협회 등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이미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채와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그가 한국 미술사에 남긴 가장 독보적인 업적은 '소'라는 모티프를 통해 민족의 기개와 한(恨)을 형상화한 것이다. 거친 붓질과 역동적인 선으로 묘사된 소의 눈망울과 울부짖음은 일제 치하의 억압받는 민족의 분노이자, 전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예술적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담배를 싸는 알루미늄 속지에 송곳으로 선을 새겨 넣고 물감을 채운 '은지화'(銀紙畵)는 그의 창의성을 잘 보여 준다. 은지화에 담긴 아이들과 물고기, 게 등의 도상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천진난만하게 담아내어, 가장 비참한 현실 속에서 가장 순수한 미학을 꽃피웠다.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지독한 고독과 거식증,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1956년 40세의 나이로 적십자 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은 허무하게 갔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하다. 그는 서구의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 골격과 해학,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어 한국 근대 회화의 자율성을 확립했다. 그가 휘두른 붓끝의 열정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자화상으로 남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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