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1888~1948)의 유작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가 출간됐다. 이 작품은 프랑스대혁명 공포정치 시기 단두대에서 처형된 수녀들의 비극적 실화를 바탕으로 죽음 앞의 공포와 구원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제시한다.
이야기의 바탕에는 1794년 7월 17일 국민공회 정부 공안위원회의 명으로 체포된 콩피에뉴 가르멜 수도원 수녀 16명의 사건이 놓여 있다. 이들은 한 명씩 차례로 단두대에서 사라진다. 작은 수도 공동체의 비극은 한 시대의 광기와 인간 존재의 불안을 함께 비춘다.
작품의 중심에는 문학적 가상 인물인 귀족 출신의 젊은 여성 블랑슈 들라포르스가 서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세상에 태어난 그는 극심한 공포심을 피해 가르멜에 들어가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앞에서 다시 두려움과 맞닥뜨린다. 베르나노스는 이 인물을 통해 역사적 격랑보다 더 깊은 내면의 공포를 붙든다.
작품의 힘은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문장들에서 나온다. 블랑슈는 "저는 공포 속에서 났고 공포 속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토로하고, 마리아 수녀는 "용기도 얼마든지 마귀의 환상일 수 있지요"라고 말한다. 죽음 앞의 공포와 용기를 단순한 대립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작품을 더 깊게 만든다.
결말에서 저버린 듯 보였던 순교 서원을 다시 택하는 블랑슈의 선택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내적 모험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단편적 역사극이나 순교극에 머물지 않고 폭력과 공포의 시대를 건너 인간이 무엇으로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는지 묻는다. 특정 종교의 틀을 넘어 가치와 구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화극이다.
베르나노스는 독일 작가 게르트루트 폰 르포르의 '단두대의 최후 여인'을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 대사 집필을 맡았으나 육필원고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 원고는 그의 죽음 이듬해인 1949년 알베르 베갱의 손질을 거쳐 연극 형식의 대본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은 다른 예술 형식으로도 이어졌다. 1952년 연극으로 먼저 큰 성공을 거뒀고 프랑시스 풀랑크의 오페라를 비롯해 영화와 영상화, 무수한 연극 무대로 변주됐다. 국내에도 1960년 안응렬의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책은 2015년 여섯 명의 공동연구진이 작가의 육필원고를 전면 검토해 펴낸 새 판본을 따른다. 베르나노스 전공자인 정영란의 번역과 프랑스 역사, 사회, 종교, 가톨릭 용어를 아우르는 상세한 각주가 더해졌다.
△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문학과지성사/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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