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달걀의 온기'
'딸에 대하여'로 알려진 김혜진 소설가가 네 번째 소설집 '달걀의 온기'를 펴냈다. 이번 소설집은 김유정문학상 대상작 '푸른색 루비콘'을 포함해 타인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이들의 완강한 다정함을 담아냈다.
소설집에는 '관종들' '빈티지 엽서' '푸른색 루비콘' '하루치의 말' '우연의 직조' '우리와 우리 아닌 것' '달걀의 온기' 등 7편이 실렸다.
표제작 '달걀의 온기'는 그 서늘한 흐름이 끝내 닿는 자리다. 투자 사기를 겪은 뒤 고향 집을 처분하러 내려온 선희는 버려지듯 조모에게 맡겨져 살아가는 민지를 자꾸만 마주친다. 원망과 자기연민 아래 묻혀 있던 감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돌봄과 보살핌의 감각도 다시 깨어난다.
[신간] '달걀의 온기'
소설집의 첫머리를 여는 '관종들'은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추운 길 위의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부부를 내세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는 문장은 김혜진 소설의 윤리를 압축한다. 거창한 연대보다 작고 구체적인 개입이 먼저 온다는 뜻이다.
'빈티지 엽서'와 '푸른색 루비콘'은 낯선 타인과 마주한 뒤 흔들리는 마음을 따라간다. 오래된 엽서의 다정한 언어는 무미건조한 삶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사별 뒤 교회에서 만난 남자와 양봉장으로 향하는 여정은 상실 이후의 생에 잠깐의 평화를 건넨다. 불신과 경계가 쉽게 거두어지지 않는 세계에서 김혜진은 뜻밖의 접촉이 남기는 파문을 세심하게 그린다.
'하루치의 말'은 말이 어떻게 마음에 묻히고 다시 꺼내지는지를 보여준다. 화자는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을 통해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다지는 법을 배워간다. 관계가 남긴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않으면서도, 그 상처를 견디는 시간을 소설의 언어로 바꿔낸다.
[신간] '달걀의 온기'
'우연의 직조'와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은 욕망과 패배, 예술과 삶의 경계를 더 서늘하게 건드린다. 표절 논란과 비난을 흡수해버리는 미술가의 세계, 한 번도 승리를 확신해본 적 없는 인물의 불안은 김혜진 소설이 다정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온기는 상처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과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오직 그녀의 것' 등을 펴냈다.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젊은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으며 동시대 한국문학의 한 축을 세워왔다.
작가의 말도 이번 소설집의 결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김혜진은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썼다. 읽는 나와 쓰는 나, 사는 나가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이 문장은 결국 소설이 왜 지금 여기에서 계속 필요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 '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창비/ 1만7000원
[신간] '달걀의 온기'
art@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