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만 원만 빌려줘'
연작소설집 '이만 원만 빌려줘'는 동반 죽음을 결심한 이들의 여정과 고작 몸값 2만 원에 유괴된 소년의 후일담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화폐 단위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세계의 잔혹한 폭력성을 파헤쳤다. 안보윤 작가는 부서진 자들이 지켜내는 인간 존엄의 실마리와 역설적인 연대의 가능성을 서늘하게 제시한다.
연작소설집은 '이만 원만 빌려줘' '(알 수 없음)' '우리가 될 수 없는' 등 소설 3편이 서로의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고통을 쉽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세계, 숫자로 사람의 값이 매겨지는 세계가 세 이야기의 바닥을 이룬다. 연작은 절망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속에서 남는 존엄의 조각을 더듬는다.
표제작 '이만 원만 빌려줘'는 자살을 결심한 '나'와 김동주의 여정을 따라간다. 동주는 어린아이를 유괴한 뒤 몸값으로 겨우 2만 원을 요구한 인물이다. 이 기이한 액수는 인간의 삶이 자본의 언어로 얼마나 비참하게 축소될 수 있는지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소설은 그러나 충격적인 설정을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고 재단하려는 마음을 거꾸로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속 화자는 "불행을 전시할수록 인간은 고독해지죠"라고 말하며 동병상련의 언어조차 쉽게 믿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두 번째 소설 '(알 수 없음)'은 고시원을 전전하는 오영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직장 내 괴롭힘 끝에 세상을 떠난 동생 이서의 죽음 앞에서도, 오영은 복수극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시간을 견딘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대목은 삶의 비참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 번째 소설 '우리가 될 수 없는'은 몸값 2만 원에 풀려난 뒤 어른이 된 정우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정우의 외상은 유괴 사건 자체보다, 그 뒤 어머니가 내면화한 모멸과 강박에서 더 깊어진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화폐 가치의 언어에 오염될 때 사랑도 쉽게 폭력으로 뒤집힌다는 사실이 아프게 남는다.
이 연작의 미덕은 함부로 구원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안보윤은 상처 입은 인물들을 쉽게 화해시키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가 부끄러워서 죽습니다" 같은 문장을 통해 파국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 끝에서조차 타인의 고통을 번역하지 않으려는 윤리를 붙든다.
연작 소설에 숨겨진 맥락은 결국 인간의 선의를 믿어보려는 움직임이다. 작가가 말한 "반드시 회복되리란 믿음"은 절망을 지우는 낙관이 아니라, 부서진 채로도 서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가깝다.
안보윤은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자음과모음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받았다.
△ '이만 원만 빌려줘'/ 안보윤 지음/ 자음과모음/ 1만5000원
[신간] '이만 원만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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