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AI 여행 에이전트 시대, 혁신인가 경험의 축소인가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12일, 오전 11:17

김영국 교수 / 강원대 관광경영학과
여행 준비의 풍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여행은 본래 설레고 즐거운 일이지만, 그 준비 과정에는 적지 않은 검색과 비교, 조율의 번거로움이 따르곤 했다. 항공권 가격을 비교하고, 숙소 후기를 확인하고, 동선을 짜고, 식당과 교통편을 점검하는 일은 오랫동안 여행의 필수 절차였다.

그러나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AI) 여행 에이전트가 이 과정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여행자는 예산과 기간, 동반자 구성, 선호 활동 같은 몇 가지 조건만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AI는 곧바로 일정 초안을 제시하고, 숙소와 이동 경로, 방문지 후보까지 정교하게 엮어낸다. 여행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이 변화의 장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 절감의 효과가 크다. 특히 가족여행, 고령자 여행, 낯선 지역을 찾는 초행 여행자에게 AI는 유능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복잡한 선택지를 압축하고 개인 조건에 맞는 대안을 한 번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고객 응대 자동화, 개인화 추천, 예약 전환율 개선은 여행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제 여행사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보유했느냐보다, 이용자의 맥락을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 신뢰성, 경험 획일화 우려 주목해야

하지만 기술의 편리함이 곧바로 여행 경험의 진보를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AI 여행 에이전트이 과연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인지, 지나친 효율화로 여행의 본질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정보의 신뢰성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이른바 ‘AI 환각’ 현상, 즉 그럴듯한 문장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미 운영이 종료된 장소를 추천하거나 영업시간과 예약 가능 여부를 잘못 안내하기도 한다.

실제 이동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일정을 제시하는 순간 여행자는 시간과 비용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여행은 단순한 정보 소비가 아니라 현장성과 이동성, 안전성이 결합된 활동이다. 작은 오류도 실제 현장에서는 큰 불편과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여행 경험의 획일화에 대한 우려다. AI는 평점과 후기, 노출 빈도, 예약 가능성 같은 데이터화된 지표를 바탕으로 평균 만족도가 높은 선택지를 골라낸다. 그러나 여행의 가치와 만족도는 이러한 정량적인 데이터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계획에 없던 골목의 작은 가게, 우연히 마주친 풍경, 현지의 느린 리듬 속에서 얻는 감각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고 여행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AI가 이런 비정형적이고 우연한 경험을 설계하는 데 본질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많은 여행자가 비슷한 질문을 입력하면 결국 비슷한 장소와 비슷한 동선을 추천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효율은 높아지겠지만 여행은 점점 예측 가능하고 무난한 상품으로 수렴할 위험이 있다.

◇AI는 도구일 뿐… 의미와 감동 대체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산업 생태계의 권력 재편에도 유의해야 한다. AI 여행 에이전트의 확산은 단순한 기능 혁신이 아니라 여행의 ‘입구’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앞으로 여행자가 검색창보다 AI 인터페이스에 더 의존하게 된다면 어떤 숙소와 식당, 어떤 관광지가 먼저 노출되는가는 곧 시장의 생존 조건이 된다.

추천 기준이 불투명하면 여행자의 선택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상업적 질서에 의해 유도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대형 플랫폼과 자본력 있는 사업자에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지역의 소규모 관광사업자와 독립 숙소, 개성 있는 로컬 콘텐츠는 추천 체계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질 수 있다.

결국 AI 여행 에이전트는 여행의 구원자도 파괴자도 아니다.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AI는 여행 준비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 도구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여행자의 판단력과 감각, 우연의 기회,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여행은 본래 낯선 세계와 마주하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AI가 길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그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의미와 감동까지 대신 생성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AI만이 아니다. 그 AI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디에서 멈춰 세울 것인지를 분별하는 더 성숙한 인간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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