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출처: Vicente López Portañ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28년 4월 16일 새벽, 스페인이 낳은 불세출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가 프랑스 보르도에서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궁정 화가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초기 삶부터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광기를 목도하며 심연의 어둠을 그려냈던 말년까지, 그의 생애는 격동하는 근대사의 축소판이었다.
고야는 1789년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정 화가로 임명되며 명성을 떨쳤다.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관찰력은 왕실의 권위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나약함과 허영을 가차 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1792년 발병한 중병으로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그의 예술 세계는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자리에 내면의 환상과 비판적 시각이 들어찼다.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공은 고야에게 깊은 정신적 흉터를 남겼다. 그는 '1808년 5월 3일'과 판화집 '전쟁의 참화'를 통해 전쟁의 영웅적 면모가 아닌, 학살당하는 민중의 공포와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했다. 이는 특정 사건의 기록을 넘어 인류 보편의 비극을 다룬 근대적 역사화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말년의 고야는 마드리드 외곽의 '귀머거리의 집' 벽면에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포함한 '검은 그림'(Pinturas Negras) 연작을 남겼다. 전통적인 미학을 완전히 거부한 이 음산하고 기괴한 작품들은 훗날 인상주의, 표현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
고야는 보이지 않는 공포와 무의식의 영역을 시각화한 최초의 예술가였다. 오늘날 고야는 고전주의의 마지막 거장이자 현대 회화의 첫 번째 개척자로 기억된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이었으나, 그가 남긴 혁신적인 필치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미술계에 거대한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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