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괄호 밖은 안녕'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이주혜가 엄정한 사유와 섬세하게 벼린 언어로 우리 사회의 여성 현실을 예리하게 탐색한 세 번째 소설집 '괄호 밖은 안녕'을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이번 소설집은 과거를 온전히 번역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단단한 괄호 속에 묶어두었던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길어 올려 비로소 마주하는 안녕의 순간들을 그려낸다.
이주혜는 전작 '자두'에서 풀어낸 슬픔의 미학을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관계의 상처와 기억의 결을 더듬는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번역'이다.
책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온전히 번역해 낼 수 있는지 묻는다. 이주혜는 과거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존재와 시간을 현재로 불러오고, 그것을 다시 해석하려는 지난한 시도를 통해 기억과 현재가 맞부딪히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단순 회상이 아니라 유령과 환영, 허상, 말하는 동물 같은 형태로 되돌아온다. 인물들은 낯선 여행지와 기묘하게 익숙한 공간을 통과하며 자신이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와 다시 마주한다. 과거를 봉합하기보다 해석 불가능성 자체를 견디며 계속 번역해보려는 태도가 이 소설집의 힘이다.
표제작 '괄호 밖은 안녕'은 그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여행 중인 번역가 화자는 음성언어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익숙한 언어가 없는 곳으로 떠나고, 산속에서 만난 맨발의 젊은 여자와 몸짓과 표정으로만 대화를 나눈다. 그 여정은 과거 가정폭력에서 도망쳐 나온 한 여자를 잠시 집에 들였던 기억과 흩어진 가족의 시간을 함께 소환한다.
수록작들도 서로 다른 결로 같은 질문을 이어간다. '여름 손님입니까'는 일본 호텔에서 언니와 엄마를 둘러싼 오래된 감정으로 되돌아가고, '안개의 기분'과 '맘껏 슬픈 사람'은 홋카이도 여행을 배경으로 엄마와 아들이 각자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그린다. '할리와 로사'와 '순영, 일월 육일 어때'는 고향과 인연의 기억을 떠남의 형식으로 다시 써낸다.
'이소중입니다'와 '초록 비가 내리는 집'은 소설집 안에서 또 다른 색을 낸다. 전자는 번역가와 소설가, 시인의 환상적 여로를 따라가며 문장가 이주혜의 만연체를 드러내고, 후자는 백여 개 식물을 남긴 집을 둘러싼 기담 형식으로 삶의 생동과 회복을 비춘다. 서로 다른 형식이지만 둘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끝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책에 실린 문장들은 감정의 미세한 균열을 집요하게 붙든다. "내가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니기를. 내가 이 몸이 아니기를"이라는 문장은 다른 존재로 건너가고 싶은 절박함을 압축한다. 또 "맘껏 슬픈 사람"이라는 바람은 정상성과 밝음만을 요구하는 세계 바깥에서 슬픔의 권리를 되묻는다.
이번 소설집에는 '안개의 기분', '여름 손님입니까', '괄호 밖은 안녕', '이소중입니다', '초록 비가 내리는 집', '할리와 로사', '맘껏 슬픈 사람', '순영, 일월 육일 어때'까지 모두 8편이 실렸다.
△ 괄호 밖은 안녕/ 이주혜 지음/ 문학동네/ 1만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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