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이소로쿠 (출처: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43년 4월 18일, 태평양 전쟁의 상징이자 일본 해군의 심장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솔로몬 제도 부건빌 섬 상공에서 전사했다. 미 육군 항공대 P-38 라이트닝 전투기 편대의 정밀한 매복 작전에 의한 격추 결과였다.
이는 우연이 아닌 철저한 정보전의 산물이었다. 미 해군 정보부는 일본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해독해 야마모토 장관의 전선 시찰 일정을 완벽히 파악했다. 장관이 탑승한 1호 기와 참모들이 탄 2호 기가 부건빌섬 상공을 통과하는 정확한 시간과 고도를 확인한 미군은 즉각 '복수' 작전을 승인했다.
과달카날 비행장에서 이륙한 18대의 P-38 전투기들은 무전 침묵을 유지하며 저공 비행으로 레이더망을 피했다. 오전 9시 30분경, 목표 지점에 도착한 미군 편대는 호위 제로센 전투기들을 따돌리고 야마모토가 탑승한 일식 육상공격기를 집중 공격했다.
총탄을 맞은 1호 기는 엔진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밀림 속으로 추락했다. 다음 날 발견된 수색 현장에서 야마모토는 기체 잔해 옆에서 군도를 쥐고 정좌한 자세로 발견됐다. 검시 결과 그는 공중에서 이미 기관총탄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일본 대본영은 이 충격적인 사실을 한 달간 은폐했으나, 결국 공식 발표를 통해 그의 사망을 시인했다. 진주만 공습을 진두지휘하며 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인물의 죽음은 일본군에게 단순한 지휘관 한 명의 상실 이상었다.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해군 최고 전략가의 부재는 일본 해군 전력의 급격한 약화와 직결됐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의 패배에 이어 야마모토 제독의 전사는 일본 제국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지휘 체계의 혼란과 사기 저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태평양의 주도권은 완전히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웅크리고 있던 미국의 반격이 본격적인 파도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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