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살길 찾는 항공사, 후폭풍 뒤집어쓴 여행사…손놓고 있는 국토부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20일, 오전 05:31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최정희 기자] 고환율과 고유가에 항공유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여행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번 충격이 단순한 외부 변수에 그치지 않고 관리·제도적 허점과 맞물리며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항공유 수급 불안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항공사의 운항 중단, 감편 등 노선 조정 조치로 인한 연쇄 피해를 막을 안전장치 부재가 여행 시장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국내외 항공사가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 여파가 단순한 항공료 환불을 넘어 숙박, 현지 투어, 렌터카 등 취소로 번지고 있지만 이를 중재할 행정적 장치는 사실상 없는 상태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유류할증료 폭등과 고환율 여파로 여행심리 위축이 우려되고 있는 16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털 출발층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신고제’의 맹점을 파고든 노선 재편

19일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항공 행정 당국인 국토교통부는 “시스템상 항공사의 예정된 항공 노선과 항공편의 ‘무단 임의 취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전 승인한 노선의 운항 정보는 실시간으로 관제 시스템에 연동돼 정해진 시각에 이착륙하지 않을 경우 즉시 파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항공 행정은 정부의 엄격한 관제 하에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관리는 가능하지만 항공사의 운항 취소나 중단으로 인한 시장의 충격이나 피해를 제어할 행정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항공사업법(제70조)에 따르면 항공사는 운항 계획을 변경할 때 국토부나 관할 지방항공청에 ‘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사가 수익성 악화나 연료 수급 문제 등을 이유로 운항 중단을 사전에 신고만 하면 2차, 3차 피해가 예상되더라도 운항을 지속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희박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항공사는 ‘신고’라는 합법적 탈출구가 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행 업계와 소비자에 대한 보상이나 구제는 행정 공백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인천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행정 사각지대 ‘유령 취소’와 소비자 피해

더 심각한 문제는 항공사와 여행사가 신규 취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행처럼 이어지는 ‘승인 전 사전 판매’ 행위다. 항공 업계는 국토부에 노선 승인을 받기 전 여행사와 사전 협의해 일정량의 좌석 수요를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노선을 늘리는 근거가 되는 사전 수요를 파악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항공사가 돌연 운항 계획을 취소해도 이 노선은 승인을 받지 않은 노선이라 사전 신고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결국 확정 상품인 줄 알고 예약까지 마친 소비자는 행정망에 기록조차 남지 않는 ‘유령 상품’으로 피해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제도상 공백은 소비자에게 ‘반쪽짜리 보상’이라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결항 시 항공료 환불과 일정액의 배상금을 명시하고 있지만, 항공사가 ‘연료 수급 등 안전 운항을 위한 불가피한 사유’로 사전에 신고한 경우 경우 면책권을 부여하고 있다. 더욱이 이 기준은 대상을 항공권으로만 국한해 항공편 취소로 무용지물이 된 현지 비환불성 숙소나 티켓 등 ‘간접 피해’에 대한 배상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실정이다. 특히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OTA를 이용한 소비자의 경우, 항공사가 발급한 공식 결항 확인서를 제출해도 ‘정책상 환불 불가’라는 일방적 약관에 가로막혀 수백만 원 상당의 위약금을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바라본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면 계약 없는 ‘을’의 실무적 고충

여행사가 항공사와 맺는 거래 계약도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명문화된 표준계약서 없이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과 구두 합의로 이뤄지는 ‘소프트 블록(좌석 일부 할당)’ 거래 구조가 여행 업계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 한 아웃바운드 여행사 관계자는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운항 계획을 취소해도 차기 좌석 배정, 요금 적용 등 불이익을 우려해 이의 제기는커녕 항의조차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불평등한 역학 관계는 여행사가 직접적인 ‘해결사’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항공 운항 취소, 변경으로 인한 호텔, 렌터카 예약 변경 등 후속 조치가 고스란히 여행사 몫이 되고 있다. 한 중견 여행사 대표는 “항공사가 운항을 취소하면 여행사는 해외 현지 호텔이나 랜드사(현지 여행사)에 일일이 연락해 항공사의 비운항 증명서를 전달하고, 위약금 면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개별적인 소명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며 “항공사 사정을 고려할 법적 의무가 없는 현지 업체에서 계약 변경을 거부할 경우 결국 소비자에 대한 환불을 여행사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항공사 노선 운항 취소로 인한 2차, 3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항공사 모니터링 대상을 승인 전 판매 노선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신학승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항공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의로 운항계획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경우 차기 슬롯 배정에서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간접 피해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이를 포괄하는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해 항공사에서 시작된 피해가 여행업계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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