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도 바꾼 ‘유류세 쇼크’…해외 포기하고 국내로 쏠린다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4월 26일, 오후 02:33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밀어 올리며 가계의 여행 지형도를 뒤흔들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은 항공권 가격에 ‘보복 소비’ 대신 ‘국내 유턴’을 택하는 이들이 늘면서, 국내 숙박업계는 때아닌 ‘비자발적 특수’를 누리는 모습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발묶인 항공기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의 최근 데이터(이달 1~23일)는 여행객들의 고심을 숫자로 증명한다. 해외 숙소 예약 건수는 지난 2월 대비 75%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년 동기 감소 폭(82%)과 비교해도 하락세가 훨씬 가파르다.

반면 국내 숙소 예약은 2월 대비 107%를 기록하며 반등했다. 이는 항공권 가격 저항선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5월 발권 항공권에는 유류할증료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적용됐다. 미주·유럽 등 장거리 노선의 경우 유류할증료만 두 달 새 5배 이상 폭등했다.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유럽 갈 돈으로 제주도 5성급 호텔에서 일주일 살겠다”는 반응이 쏟아지며, 비행기 값을 아껴 국내 숙박의 질을 높이는 ‘실속형 럭셔리’ 여행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경주 96%·해운대 88%…리조트 ‘풀부킹’

국내 유입 수요의 수혜는 지방 거점 리조트가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 한화리조트의 4월 평균 투숙률은 전년 대비 8%포인트 상승했으며, 지역별로는 경주가 무려 96%를 기록해 사실상 만실 상태다. 제주(16.2%p↑)와 대천(13.5%p↑) 등 주요 관광지 지표도 일제히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이랜드파크의 켄싱턴리조트와 켄트호텔 역시 4월 예약률이 전년 대비 최대 40%까지 치솟았다. 다음 달 초 황금연휴 기간 켄싱턴 전 지점 평균 예약률은 이미 90%를 넘어서며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강원권 설악밸리와 설악비치 등 체류형 리조트에도 여름 성수기 못지않은 예약 문의가 쏟아지고 있으며, 이미 6월 주말 예약률이 80%를 상회하고 있다.



◇주요 도심 호캉스도 ‘후끈’

서울과 부산의 주요 호텔들 역시 견조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웨스틴 조선 서울과 명동 일대 호텔들은 90%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 중이다. 특히 부산 지역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롯데호텔 부산과 그랜드 하얏트 제주는 각각 투숙률이 전년 대비 10%p 안팎 상승하며 90%에 육박하는 실적을 냈다.

업계에서는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여행) 관광객 회복세에 해외여행을 포기한 국내 ‘호캉스족’이 가세하면서, 호텔업계가 고물가 속에서도 실적 방어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특수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보다는 외부 변수에 의한 ‘반사 이익’ 성격이 강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여름 성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늘어난 수요에 따른 숙박비 동반 상승을 경계하고 있다.

숙박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 국면이 지속되는 한 국내 여행 강세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면서도 “이번 기회에 국내 관광의 매력을 확실히 각인시키지 못하면 유가 안정 시 다시 수요를 뺏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늘어난 고객을 잡기 위해선 단순한 가격 차별화를 넘어 해외여행 이상의 콘텐츠와 프리미엄 서비스 질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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